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한 미국인 "한미FTA는 불평등조약"

<현장> 충돌.충돌.충돌, 자국민과 싸움 벌이는 정부

“한미FTA는 미 제국주의의 힘을 바탕으로 한 불평등한 조약이다. 한국 국민들은 당연히 이 잘못된 조약의 체결을 거부해야 한다. 그것이 옳은 일이다.”

한 미국인이 발언대에 나와 외친 말이다.

미국 정부의 이라크 침공에 항의하며 50만명의 시위대를 몰아 백악관을 둘러쌌던 대표적인 국제 반전.반세계화 단체 ‘앤서(ANSWER)’의 브라이언 베커 대표는 ‘한미FTA’를 ‘미 제국주의’의 또 다른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당초 신라호텔 앞에서 이해영 한신대 교수와 함께 1인 시위에 나설 예정이었지만 경찰의 원천봉쇄에 막히자 이날 광화문의 촛불집회에 참석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는 신라호텔 앞에서의 일을 거론하며 동시에 "한국이 FTA협상에 앞서 4대 선결조건을 내 준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거듭 협상 중단만이 올바른 길이라고 강조했다.

'한미FTA는 또 다른 미 제국주의'라고 목소리를 높인 브라이언 베커 반전단체 '앤서'대표.ⓒ최병성 기자


경찰과 시민단체의 격한 충돌로 결코 순탄치 않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2차 본협상의 개시를 알린 10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 앞. 한미FTA협상을 반대하는 80여명의 시민단체 관계자, 노동자, 학생들이 촛불을 들었다.

이날 참가자들은 오전에 있었던 경찰의 과잉진압을 맹성토하며 향후 남은 일정의 강도를 높여 정부의 폭력 진압에 대응해나가겠다고 밝혔다.

평택 방불케 한 경찰의 과잉진압

지난 해 농민집회, 올해 평택 대추리의 행정대집행 저지 투쟁 이후 또 다시 정부와 시민사회의 대규모 충돌이 불가피해졌다.

이와 관련 박석운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는 “오늘 벌어졌던 경찰의 기자회견 방해에 대해서 아무런 공식적인 대답을 듣지 못했다”며 “11일도 신라호텔 앞에서 예정되어있는 기자회견을 반드시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표는 “마찰을 피하는 방법은 경찰이 합법적인 기자회견을 허용하는 것 뿐”이라며 “경찰의 방해가 계속될수록 한국 정부의 부당함만을 보여주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이날 경찰의 경계근무는 오전 9시 민주노총의 집회차량을 이용한 기자회견 저지를 시작으로 오전 11시 30분경에는 겨우 15~20명 남짓한 시민단체 공동기자회견마저 공간을 내주지 않았다.

경찰은 약식 기자회견을 진행하려는 시민단체 참가자들을 본래 있던 자리에서 10여미터 이상 밀어냈고 뒤에서 지시를 내리는 격대장들은 "밀어, 밀어내"라고 말하며 독려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10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 앞에는 경찰의 폭력진압과 정부의 일방적인 FTA추진에 항의하는 80여명의 시민이 모여 촛불을 들었다.ⓒ최병성 기자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단체 관계자들.ⓒ최병성 기자


설령 기자회견이 집회의 형식으로 변질됐고 집회차량의 주차지역이 특수경계지역이라는 경찰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견인차를 동원하고 단상을 점거해 강제해산에 나선 것은 유례가 없는 진압형식이었다.

지난 해 농민집회 이후 자제하던 경찰의 과잉 진압이 다시 고개를 든 것 아니냐는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예상보다도 무리하게 시민단체들을 진압한 이날 경찰의 행위로 인해 정부는 앞으로 남은 협상기간 동안 자국민을 상대로 격렬한 싸움을 벌여야하는 부담을 안게 된 셈이다.

또한 이는 뒤늦게 ‘국내팀’의 별도 운영을 통해 반대단체에 대한 의견수렴 의사를 밝힌 정부의 향후 방침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이날 경찰의 진압행위는 두고 두고 정부의 ‘자충수’로 해석될 여지를 남겨놓는 것이다.

“일방적인 공청회 고집하더니 이제 와서 국내 의견수렴한다고?”

범국본 관계자는 이 같은 정부의 방침에 “국내 반대단체의 의견을 수렴할 국내팀을 별도로 운영한다면서 가두행진을 하는 집회도 아닌 기자회견 자체를 이렇게 폭력적으로 막아선다는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면서 “국내팀을 만들기 전에 지난 두 차례 무산된 공청회나 제대로 형식을 갖춰 진행하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함께 첫 날 협상결과 미국이 쌀을 비롯한 품목별 상품 양허안의 선교환 방침을 굽히지 않고 사교육시장 개방 등을 추가로 요구한 반면 우리 정부 측이 제시한 서비스.투장 유보안의 선교환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부는 쌀을 비롯한 공공서비스 등 민감 품목 및 분야를 보호하기 위한 힘겨운 싸움을 벌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지난 2월 한미 양국의 본협상 개시 이전부터 꾸준하게 국내 의견 수렴을 주장했던 시민단체들의 압박을 외면한 정부로서는 미국의 개방압력에 굴복할 경우 가뜩이나 반대입장이 거세지고 있는 국내 여론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어 이래저래 정부는 이중 삼중의 부담을 떠안는 꼴이 됐다.

또한 우리 정부가 지난 1차 협상에서 시민단체들이 핵심적인 독소조항으로 꼽는 투자의제 대부분에서 의견 접근을 이룬 것으로 알려져, 협상이 연말까지 일정대로 진행된다 해도 반대진영을 설득한 논리가 부실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인 상황이다.

범국본 “14일까지 예정된 일정 소화, 경찰과의 마찰 피하지 않을 것”

한편 이날 경찰의 과잉 진압에도 불구하고 범국본은 협상 이틀째를 맞는 11일에도 신라호텔 앞에서 3차례의 기자회견을 예고하고 있다.

10일 오전 경찰은 신라호텔 앞의 기자회견을 불허하는 과정에서 15명 남짓한 시민단체들을 병력을 앞세워 밀어냈다.ⓒ최병성 기자


민주노총의 집회차량을 강제 견인하는 경찰. 이날 경찰은 기자회견을 진행 중인 단상에 올라 연행을 시도하는 등 시종일관 과잉진압으로 물의를 빚었다.ⓒ최병성 기자


우선, 오전 9시에는 한미 양국의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의 ‘한미FTA저지 국제연대 공동기자회견’이 예정되어있고 뒤이어 10시와 10시 30분에는 한미FTA저지 환경대책위원회와 약대생들의 기자회견이 잇달아 열린다.

이어 오후 7시에는 신라호텔 인근 동국대학교 대운동장에서 2만명 이상이 운집하는 총궐기 투쟁 전야제를 다음 날 오전까지 진행한 뒤 오후 2시부터 노동자.농민.학생 등 부문대회를 거쳐 오후 4시 광화문에 10만명이 모이는 범국민대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범국본 측은 이날 범국민대회에 농민과 노동자, 각각 3만여명을 비롯해 최소 8만명 이상이 참가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특히 범국본은 이날 범국민대회에서 ‘청와대 인간 띠 잇기’ 행사를 강행할 것이라고 밝혀 지난 해 두 농민의 죽음으로 촉발된 경찰과 참가자들의 격렬한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나흘간의 본격적인 한미 FTA협상이 시작된 10일, 정부가 경찰의 과잉진압에 따른 대정부 비판여론과 미국의 거센 개방요구로 인해 수세에 몰린 협상국면 속에서 어떤 행보를 취할 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병성 기자

댓글이 0 개 있습니다.

↑ 맨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