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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향 짓밟고 대통령은 퇴임후 고향 간다고?”

<현장> 삼보일보마저 막힌 대추리 주민들

“니들 백 명, 천 명 들이대도 우리 아들만한 놈 없어. 내 고향, 내 땅 지키겠다고 내려온 아들을 왜 갖다 잡아넣어. 제 고향 땅 뺏기지 않겠다고 싸운 내 아들놈을 왜 잡아넣어. 당장 내놔라 이놈들아.”

구슬피도 울었다. 김지태 이장의 어머니 황필순 할머니의 절규는 슬픈 가락이 되어 주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다. 이후에도 한참을 할머니는 구속된 아들을 석방하라며 통곡을 멈추지 못했다.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창성동 구 정부합동청사 앞에 평택 주민과 활동가 50여명이 모여들었다. 대부분 60대를 넘긴 고령의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이 상경한 이유는 청와대 앞에서 11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문정현 신부의 지지방문과 현재 구속상태인 김지태 팽성 대책위 위원장의 석방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오전 11시경 모인 이들은 경찰의 삼엄한 경계 속에서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독도는 우리 땅’을 개사한 ‘평택은 우리 땅’을 부르며 시작한 기자회견은 차라리 절규에 가까웠다.

김지태 이장 석방과 평화적인 대추리 3차 범국민대회 보장을 촉구하는 대추리 주민들.ⓒ최병성


주민들은 월드컵에 묻힌 대추리, 도두리 일대에 언제 공권력이 투입 될지 몰라 하루하루가 불안하다고 했다. 편파보도만 믿지 말고 단 한번만이라도 대추리로 내려와 참상을 봐달라고 국민들에게 호소하기도 했다.

"남의 고향 짓밟고 자기 고향 찾아가는 대통령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

퇴임하고 고향 봉화로 내려간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소식에 고향을 빼앗긴 이들의 분노와 한탄은 극에 달했다. 주민들의 고향을 밟고 자신의 고향으로 내려가겠다는 대통령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도 했다.

‘이 들을 베고 죽고 싶다는, 세 번씩이나 쫓겨날 수 없다’는 어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함께한 김지태 위원장을 무슨 죄로 구속시키느냐고 항변하기도 했다.

대추리 주민 신정원씨는 “얼마전 언론보도에서 대통령이 퇴임 후 고향으로 내려간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대추리.도두리를 고향으로 살아 온 수천명의 주민들은 가혹하게 내쫓고는 그 분 혼자만 내려가겠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발언 내내 통곡을 그치지 못한 황필순 할머니는 “우리 주민들 내장을 꺼내보면 먹물밖에 안나올 것”이라며 “어떻게 이렇게 주민들을 내쫓고 아들들을 잡아넣고도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냐”고 한탄했다.

구속된 김지태 팽성 대책위 위원장의 어머니 황필순 할머니.ⓒ최병성


방승률 할아버지는 “지금 대추리에는 민주주의가 정착되기 이전보다 훨씬 심한 탄압으로 사람들을 짓밟고 있다”며 “평택에, 대추리에 와서 평생 농사를 지어 온 주민들이 뭘 잘못했느지 직접 눈으로 보고 판단해달라”고 호소했다.

"짓밟힌 대추리, 도두리 단 한번이라도 당신들의 눈으로 확인해보라"

발언이 이어지는 사이사이 고령의 주민들은 “단 한번이라도 내려와서 너희들의 눈으로 대추리, 도두리가 어떻게 짓밟혔는지 확인하라”며 절규를 멈추지 않았다.

이어 주민발언과 청와대에 보내는 항의서한 낭독이 끝난 후 이들은 항의서한를 접수하고 문정현 신부를 지지방문하기 위한 삼보 일배에 나섰다.

발걸음마다 의미가 있어 1보는 ‘생명과 평화의 땅 황새울을 지켜내지 못하고 군대와 경찰에 빼앗긴 것을' 2보에는 ’정책을 잘못 집행한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지 못하고 원망만 한 마음을‘, 3보는 평택 사태에 무관심한 국민들을 원망한 마음’에 대한 뉘우침을 담는다고 했다.

대추리 주민들의 삼보일배는 경찰의 봉쇄에 이내 가로막혔다.ⓒ최병성


"걸어서는 가도 되고 삼보일배로는 못간다고?"

하지만 경찰은 대부분 고령인 주민들의 삼보일배를 허용하지 않았다. 주민들이 삼보일배의 대형을 갖추자마자 주민들을 에워싼 경찰은 이후 2시간이 넘도록 이들을 바닥에 주저앉혀버렸다.

‘일반인들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을 왜 막고 나서는냐’는 주민들의 항의에도 경찰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돌아온 대답은 고작 “걸어서는 가도 되지만 삼보일배는 안된다”는 모호한 대답뿐이었다.

평택 범대위와 경찰 측의 실랑이는 한 시간을 넘어섰고 노인들은 정부합동청사 앞에 주저앉아 현 정부를 향해 분노의 목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경찰 측은 주민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오후 2시경 삼보일배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주민 15명씩 나눠서 문 신부가 있는 청와대 분수대 앞까지 다녀오는 것을 허용했다.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주민들의 서한도 공식접수하기로 했다.

지친 표정으로 손자뻘 되는 전경들 앞에 주저앉았던 주민들은 그제서야 늦은 점심식사를 위해 하나 둘씩 자리를 떴다.

식당으로 들어가던 한 할아버지는 혼잣말처럼 입술을 들썩이며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대추리, 도두리에는 아직까지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군인들이랑 경찰들이 우글대고 아무리 철조망으로 빙 둘러쳐놔도 우리는 씨를 뿌릴 거"라고 마른 입술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18일 대추리 3차 범국민대회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추리 들녁.ⓒ최병성


한편 평택 범대위는 지난 5월 14일 이후 한달여만인 18일 오후 2시 대추리에서 3차 범국민대회를 연다. 민주노총 조합원 3천여명을 포함해 전국에서 5천명 이상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대회 역시 경찰은 원천봉쇄 및 집회불허 방침을 밝히고 있어 충돌이 예상된다.

범대위는 이날 범국민대회에서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전면 재협상’고 함께 ‘김지태 이장을 비롯한 구속자 전원 석방’을 요구할 예정이다.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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