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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김에 홀딱 벗고 주자"

[盧정권의 부동산 망국사] <7> 對재벌 종합선물세트 '기업도시'

골프도시는 ‘예고편’, ‘본편’ 기업도시 출현하다

이헌재 부총리의 ‘골프 도시’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정작 ‘본편’, 즉 더 큰 노림수는 다른 데 있었다.

장기 경기침체로 노무현 정부가 한창 초조해하던 2004년 6월15일의 일이다. 재벌 연합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정부에 대해 이른바 ‘기업도시’ 허용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른바 '기업도시', 보다 직설적 표현으로는 '기업해방도시'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기업도시는 장기 경기침체로 노무현 정부가 초조해하자, 재계가 이헌재 부총리와의 사전협의를 거쳐 꺼내든 회심의 카드였다.

전경련은 이날 오후 서울 조선호텔에서 재계 및 정-관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업도시 건설을 위한 정책포럼'을 개최, 정부에 대해 기업도시를 허용해줄 것을 공개리에 요구했다. 주제발표에 나선 이규황 전경련 전무는 전경련의 기업도시 요구안을 발표한 뒤 "기업도시를 건설할 경우 5백만평의 첨단산업 기업도시 개발시 건설효과를 시산하면 향후 3년간 28조원이 투자가 예상되며 국내총생산 3년간 연 1~2%가 증가하고 취업자수는 3년간 연1~2% 증가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신호 전경련 회장도 개회사를 통해 "기업도시 건설은 정부 시책인 2만불 달성을 위한 성장전략"이라면서 "외국의 기업도시 사례가 여러 개 있다"고 주장했다. 강 회장은 "일본 도요타시는 기업도시의 모델로 일본에서도 살기 좋은 도시, 기업하기 좋은 도시로 손꼽힌다"며 "스웨덴 시스타시도 에릭슨을 위주로 한 기업도시로 다른 나라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고 강변했다.

이날 전경련은 정부에 대해 구체적으로 7가지 요구를 했다.

특히 주목을 끈 요구는 맨 첫번째의 "기업이 개발단계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해 산업시설과 정주시설을 연계해 건설하도록 '기업도시 특구'를 지정하고 특히 기업도시 내에 민간시행자에게도 토지수용권을 허용해 달라"는 것이었다. '토지수용권'이란 공익을 위해 개인의 재산권을 제한하는 조치로, 위헌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사안인 만큼 그동안 중앙정부나 지방자치정부에게만 엄격히 허용돼 왔다. 그런데 이익집단인 재계가 이것을 자신들에게 달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기업이 조성된 토지의 처분가격과 방법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허용하고, 주택공급방식은 시행자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위임해 달라"는 두 번째 요구도 오만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재벌이 민간인 토지를 평당 몇만원에 강제수용해 1백만원에 팔든, 1천만원에 뻥튀기해 팔든 정부는 모른 채 눈 감아달라는 것이었다.

"교육 서비스를 위해 자립형사립고. 특수목적고 설립 조건을 완화하고 경제자유구역처럼 기업도시내 외국인대학설립을 허용하고 영리법인도 대학(전문)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해주고, 등록금 자율화와 기여입학제도 허용해 달라"는 세 번째 요구와, "의료.문화.레저 서비스 확보를 위해 영리법인도 종합병원을 개설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원활한 병원 유치를 위해 법인세도 내려달라"는 네 번째 요구도 속 들여다보이는 요구였다. 확실한 돈벌이 수단인 학원 및 병원사업도 보너스로 허용해 달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문화&#8228;레저 시설 건설에 제약을 주는 도시공원법, 군사시설보호법 등 체육시설 관련 규제조항을 완화하고 이들 시설에 기업명칭제 도입, 골프장설립 및 부대시설 규제완화"를 주문한 다섯 번째 요구는 기업도시를 요구하는 속내가 '개발이익'에 있음을 재차 분명히 한 것이었다.

기반시설에 대한 지원과 조세 및 부담금 감면을 요구하며 구체적으로 "개발지역내는 시행자 부담을 원칙으로 하고 밖은 지차제와 정부 부담으로 하되 입지지역의 낙후 정도에 따라 부담을 차등 적용하며 경제자유구역 개발업자와 같은 수준의 조세 및 부담금 감면혜택을 달라"고 한 여섯 번째 요구도 속 보이는 특혜 주문이었다. 현행법은 개발지역 안은 물론은 밖의 기반시설 부담을 사업자가 맡도록 돼 있다. 이를 바꿔 바깥 기반시설 부담을 정부와 지자체에게 떠넘기려 하는 것이었다.

출자총액제한 폐지 또한 기업도시 투자에 대한 출자총액제한 예외를 요구하며 "신용공여제도의 경우도 현행 자기자본 25% 범위를 기업도시 투자기업에게는 40%로 상향 조정하고 부채비율 제한 2백% 한도초과 규정에서도 예외로 인정해 달라"는 마지막 일곱 번째 요구는기업도시를 제 돈이 아니라 은행 돈 등을 빌려 개발하겠다는 것이었다.
전경련은 이밖에 기업도시 내에 들어서는 산업시설에 대해서는 '노동유연성'을 보장해 달라는 부대요구를 하기도 했다.

이규황 전무는 이상의 요구를 열거한 뒤 이를 위해선 결국 "기업도시특구 지정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면서 "오는 6월30일 기업도시 건설관련 건의안을 정부에 제출할 테니 9월 정기 국회에서 처리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정부와 정치권에 주문했다.

전경련 요구는 한마디로 "모든 규제로부터의 완전해방구 건설"로 요약가능하며, 특히 핵심은 전면적인 '부동산규제 해제'였고 궁극의 노림수는 천문학적 '개발이익'이었다. 요컨대 돈 들어가는 기간시설 공사는 정부-지자체가 떠맡고, 돈 되는 택지개발이나 아파트건설-분양은 모두 민간이 독차지하겠다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식 요구였다.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의 표현을 빌면 “전무후무한 대(對)재벌 종합선물세트”인 '기업도시' 요구는 그러나 우발적인 게 아니라, 재계와 정부가 오랜 물밑 협의를 거쳐 탄생한 것이었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경기부양 2탄'이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공청회, 잘 짜여진 ‘사전각본’에 따른 한 편의 쇼

재벌과 정부의 ‘사전 묵계’는 이날 정책토론회 과정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김광림 재경부차관은 격려사를 통해 "정부는 기업도시 건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기업규제 완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기업도시는 기업의 자율과 창의를 바탕으로 기업 주도하에 산업시설. 주거. 복지 시설 등을 갖춘 자족 도시"라고 주장했다. 김 차관은 "9월말부터 산업단지 특구, 교육특구, 레저특구 등이 시행될 예정"이라면서 "정부에서는 기업도시 건설 지원방안도 함께 논의되고 있다"고 밝혀 재계와의 사전협의 사실을 드러냈다. 그는 "산업기능과 연구기능을 합친 혁신클러스터 육성방안도 추진중인데, 여기에 기업도시가 가세하면 더욱 국토의 균형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차관은 "재경부도 최근 도요타시를 현장조사한 결과 지방정부가 토지를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등 아낌없는 지원과 혜택을 줬다"고 말해, 기업도시를 위해 해외출장까지 다녀왔음을 드러냈다.

"전경련이 지난 몇년간 내놓은 아이디어 중 기업도시 구상이 제일 좋다"며 기업도시법 제정에 총대를 맨 강봉균 열린우리당 의원(현 정책위의장). ⓒ연합뉴스


이날 특히 눈길을 끈 것은 그동안 재벌개혁을 주창해온 열린우리당의 달라진 모습이었다. 김 차관에 이어 격려사에 나선 열린우리당 홍재형 정책위의장은 "우리나라 대기업은 압축성장의 주역이며 정부는 대기업이 경제하려는 의지가 살아나도록 기업환경 조성에 힘을 합해 나갈 것"이라고 대기업 예찬론을 편 뒤 "중소기업도 대기업이 투자해야 따르는 만큼 대기업의 투자확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홍 의장은 이어 "경제성장동력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전경련이 기업도시 건설로 투자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구상과 토론회를 여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면서 "열린우리당은 기업도시 계획이 잘 추진되도록 필요하다면 특별법 제정에 적극적 협조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재경부장관 출신의 강봉균 열린우리당 의원도 "전경련이 지난 몇년간 내놓은 아이디어 중 기업도시 구상이 제일 좋다"고 화답하며 "나는 경제자유구역법에 관여한 적도 있는 만큼 특별법 통과에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또 "특별법 통과를 위해서는 규제완화를 반대하는 세력과 합의를 이끌어내고 설득을 하는 것이 관건"이라면서 "유치 희망 지역주민들의 의사를 무기로 해서 난관을 돌파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해, 기업도시 반대여론을 기업도시 유치시 땅값이 오를 것을 기대해 찬성할 게 확실한 지역주민들을 내세워 무력화시켜야 한다는 전술적 조언까지 아끼지 않았다.

야당인 한나라당 이강두 정책위의장도 "현재의 경제상황은 매우 심각하다"고 정부의 경제실정을 비난하면서도 "기업도시가 침체된 경제살리기에 특효약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전폭적 지지 입장을 밝혔다.

언론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토론회에 패널로 나선 <매일경제신문>의 강응선 논설위원은 "특화된 인센티브 없이는 기업도시 구상은 시작부터 죽을 것"이라면서 "지자체는 '노사분규가 몇년간 없도록 하겠다'는 식의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앙정부도 경제자유구역 이상으로 토지 이용에 대한 인센티브를 기업에게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이런 '인센티브론'에 대해 토론사회를 맡은 삼성 출신의 현명관 전경련 부회장은 "사실 개발이익에 대한 특혜시비로 기업도시의 싹이 잘릴까 우려된다"고 화답했다.

‘기업도시’ 구상은 노무현 대통령과도 사전 협의를 거친 것임이 곧 드러났다.

노 대통령은 기업도시가 제안된 이틀 뒤인 6월17일 '국가균형발전 5개년 계획'에 대한 국정과제회의를 주재된 자리에서 "기업도시가 지방을 살리는 정책이라면 설혹 형평성 문제가 나오더라도 적극적인 지원 정책을 펴겠다"고 말해, 전경련이 요구한 특혜성 기업도시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 발언이 여론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자, 이틀 뒤인 6월1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산업자원부가 공동으로 마련한 `일자리창출을 위한 투자전략 보고회`에서는 "보도를 보면 엄청난 특혜만 있는 것처럼 보여지고 있어 아쉽다"고 언론보도에 불만을 토로한 뒤 "수도권과 충청권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하겠다는 것인데 이것이 홍보가 잘 안되고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하지만 노대통령은 충청권 반발이 거세지자 넉달 뒤인 10월20일 충북지역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해 “충청권에도 기업도시 유치를 허용하겠다.”고 말을 바꾸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이날 "나는 반기업적 대통령이 아니며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가기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다"고 말해, 재계에 재차 러브콜을 보냈다. 이날 보고회에는 이건희 삼성그룹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회장 등 재벌총수들을 비롯해 재계인사 3백50여명이 참석하고 있었다.

노 대통령의 적극적 기업도시 지지 의사 표명이 있자, 기업도시 주무장관인 강동석 건설교통부장관은 이날 보고회에서 "이달내로 건교부내에 실무지원팀을 구성해 지원해 나갈 것"이라면서 "토지수용권, 개발이익분배 등 문제가 되는 부분을 면밀히 검토해 필요할 경우 특별법 제정을 고려할 것"이라고 기업도시 강행 방침을 밝혔다. 그는 또 "삼성의 아산 탕정 LCD 단지 개발과 관련해서도 인프라 건설에 4천억원 규모의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한마디로 말해 전경련의 기업도시 요구는 ‘잘 짜여진 사전각본’에 따른 한 편의 ‘쇼’였다.

성난 여론, “한국판 로보캅 시대 열자는 거냐”

전경련과 정부-정치권-언론의 ‘기업도시’ 드라이브는 당연히 여론의 거센 저항에 직면했다. 출범 첫해 아파트투기를 조장했던 참여정부가 또다시 재벌 편에 서서 제2의 부동산투기를 재연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낳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은 기업도시 공론화 다음날 즉각 논평을 통해 "전경련의 기업도시 요구조건과 입법요구는 기업투자를 조건으로 재벌자유구역을 설치하겠다는 것"이라며 "7대 요구안은 재벌에 대한 무한한 특혜와 국민의 주거권과 생명권을 담보로 한 사업권 요구이며, 정부의 역할을 재벌에게 달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노당은 이어 "특히 기업도시 내에 민간업자의 토지수용권 요구, 기업이 조성된 토지의 처분가격과 방법에 대한 자율결정권 요구, 주택공급방식의 자율적 결정요구, 자립형사립고와 특수목적고 설립 조건 완화, 골프장 설립규제완화 등의 요구안은 폭리 취득의 자유, 부동산 투기의 자유, 사교육을 통한 이윤창출의 자유를 요구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노당은 또 정부여당이 전경련 제안에 화답한 것과 관련, "이런 터무니없는 재벌공화국 건설 요구에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합창으로 화답한 것은 이들이 국민의 주거권과 교육권에 관심이 없다는 반증"이라며 "김광림 재경부차관과 홍재형 열린우리당 정책의장의 기업도시 극찬은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재벌의 이중대임을 실토한 대목"이라고 비난했다.

경실련도 논평을 통해 "전경련의 기업도시 요구를 정부가 적극 수용한 것은 기업도시 건설에 따른 대폭적인 규제완화와 합리적 절차와 타당성 검토, 그리고 국민적 합의 없는 재벌정책 변화에 큰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며 "만약 정부가 재벌에게 과도한 특혜를 주는 이 계획을 적극 추진한다면 이는 참여정부의 개혁정책의 후퇴로 단정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실련은 정부가 전폭적 지원을 약속한 전경련 요구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기도 했다. 경실련은 우선 "출자총액제한제, 은행법 등 예외 인정은 기업투자 활성화와 전혀 무관하며 오히려 이를 통해 재벌의 총수1인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는 빌미를 제공할 따름"이라고 주장했다. 경실련은 정부가 기업도시를 만드는 시행업체에 대해 법인세와 소득세, 관세, 취득세, 재산세, 종합토지세 등을 일정기간 감면해 주는 것에 대해서도 "재벌에게만 국한된 과도한 특혜"라며 "기업도시 건설의 시행주체와 참여업체는 소수 재벌만이 가능함에도 이들에게 과도한 조세감면을 시행한다면, 이는 현재 극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 근로소득자들과 비교했을 때 조세형평성에 국가 건전재정에 심대한 저해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실련은 이밖에 “기업도시 건설법안에는 토지수용권과 이용권, 수익권에 대한 대책, 외국인 학교와 자립형 사립고 설립 허용, 기업의 영리적 의료시설 설립 등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전교조 등 교육단체를 비롯한 환경단체, 노동단체 등 여러 단체와 경제전문가, 다수 국민여론도 “전무후무한 재벌특혜법에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며 강력반발했다. 경제전문가들은 전경련 및 일부 언론들이 일본의 도요타시, 프랑스의 니스시 등을 기업도시의 벤치마킹 모델로 제시한 것에 대해서도 “도요다시나 니스시는 수십년간에 걸쳐 기업생산활동 과정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도시이지, 결코 토지수용권 같은 특혜를 줘 만들어진 도시가 아니다”라며 “정말로 국가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기업도시를 만들고 싶으면 우리나라의 대표적 기업도시인 현대그룹의 울산이나 포스코의 포항을 더 발전시키면 되는 일이지 무슨 놈의 뚱딴지같은 기업도시냐”고 허구성을 꼬집었다.

오래 전 할리웃 영화 <로보캅 3>을 보면, 한 일본계 악덕재벌이 도시 개발을 위해 서민들이 살고 있던 지역의 토지를 강제수용하려 하자 하루아침에 보금자리에서 쫓겨나게 된 서민들이 집단 봉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재벌은 폭력단 등을 동원해 강제로 토지를 수용하려 하고, 이에 로보캅이 나서 서민들을 도와 재벌의 음모를 좌절시킨다는 스토리다. 전경련의 기업도시 구상은 공상 오락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한국판 로보캅 시대’가 실제로 도래할 것을 알리는 황당한 신호탄이었다.

“여론? 신경 쓸 것 없어”, 건교부의 속전속결

특혜 시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업도시를 밀어붙였다.

강동석 건교부장관은 그해 9월17일 전경련 부설 국제경영원(IMI)이 주최한 '최고경영자 월례조찬회'에서 전경련이 요구하던 '기업도시 토지 강제수용권 1백%' 부여와 관련, "기업에 1백% 토지수용권을 부여하는 것은 실효성도 없고 저항도 심할 것"이라며 "그 대신 민간기업이 개발대상 토지의 50%를 (땅주인과) 협의매수할 경우 나머지에 대해서는 강제수용권을 부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특혜 시비를 의식한 절충안이었다.

강 장관은 이어 기업도시 조성에 따른 개발이익과 관련, "기업에 개발이익을 무한정 주게되면 지역민들의 환영도 왜곡될 수 있는 만큼 개발이익이 났을 때 일부를 떼어 문예회관이나 공원을 건설하는 등 기업도시내 공공 인프라 확충에 써야 한다"며 "개발이익의 30%만 기업이 취하고 나머지는 공공 인프라에 쓰는 토공-주공의 사례를 참고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요컨대 개발이익의 최소한 30%를 보장해주겠다는 얘기였다.
강 장관 발언에 대해 전경련의 이규황 전무는 "정부의 전향적 움직임을 환영한다"면서도 "다만 협의매수 비율과 개발이익 배분 비율에 대해서는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해, 1백% 강제수용을 거듭 요구하며 불만을 토로했다.

건교부는 강 장관의 발언이 있은 지 나흘 뒤인 9월21일 기업투자 활성화와 국가 균형발전을 명분으로 마련한 '민간복합도시개발특별법'(기업도시법) 안을 발표했다. 건교부는 이어 다음날인 22일 단 한차례 공청회를 거쳐, 당정협의를 거쳐 10월초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말 그대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식의 속전속결이었다.

정부가 마련한 기업도시의 유형은 ▲산업교역형(제조업과 교역중심의 도시) ▲지식기반형(연구, 개발 위주) ▲관광레저형(관광레저, 문화위주의 도시) ▲혁심거점형 (공공기관 지방이전 중심의 지역 혁신 도시) 등 4가지였다.

정부는 논란이 돼온 '토지 강제수용권'과 관련, 전경련 요구를 전폭 수용해 ▲사업구역 50% 이상의 토지를 협의 매수후 수용 가능하고 ▲공공부문과 공동시행시에는 제한없이 수용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요컨대 민간기업 혼자서 사업을 할 때는 개발지의 50%에 달하는 땅에 대한 토지 강제수용권을, 공공부문과 함께 할 때에는 100% 토지 강제수용권을 주겠다는 얘기였다. 정부는 또한 투기지역 이외에서는 민간기업에게 조성토지 처분과 주택공급의 자율성을 인정하기로 해, 재벌이 기업도시를 조성한 뒤 헐값에 강제수용한 땅을 비싸게 되파는 것을 허용키로 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각종 조세 및 부담금 감면을 해주고, 시행자가 부담하는 SOC(사회간접자본) 투자비용의 상당액에 대해서도 SOC민간투자사업과 마찬가지로, 출자총액제한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민간복합도시 출자액에 대해선 신용공여한도 적용상 예외로 인정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중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와 함께 관광레저형 도시의 경우 총 사업비 5천억원 이상을 투자하는 사업시행자에 한해 외국인전용 카지노장을 허락하는 동시에, 경마, 경륜, 경정장 유치도 허용하는 방안 등 도박사업을 전면허용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도시 형태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유형의 도시에 골프장 신설을 자유화했다.

한마디로, 정부안은 전경련이 요구한 '기업도시'안을 거의 1백% 수용한 전무후무한 특혜 종합선물 세트였다.

정치권 ‘철판 공조’, "주는 김에 홀딱 벗고 주자"

9월2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2층 국제회의장에서 '민간복합도시(기업도시) 개발방향과 특별법 제정(안)에 관한 공청회'가 열린우리당 소속의 김한길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의장의 사회로 열렸다. 이날 공청회는 사안의 중대성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단 한차례로 정해진, 말 그대로의 '요식행위'였다.

주제발표에 나선 이양재 원광대 교수(토목환경.도시공학과)는 주제발표를 통해 "가칭 '민간복합도시'는 민간기업의 국내투자 활성화를 도모하고 국가균형발전을 도모하려는 도시개발사의 새 장을 여는 매우 모험적 시도"라며 "내용적으로 볼 때 외국의 기업도시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될 것으로 보여 개발방향 설정이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특혜 논란을 의식한듯, "투자를 통해서 발생한 개발이익이 사업시행자에게 귀속하는 것은 타당하나 개발권 인.허가를 통해서 발생한 개발이익은 환수하도록 해야 한다"며, 정상이윤의 적정수준에 대해 "소위 신활력지역처럼 개발이익을 크게 기대할 수 없는 지역은 10~15%를 정상이윤으로 설정하되 지역개발정도가 매우 양호한 지역은 정상이윤을 5% 미만으로 설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기업이 민간복합도시개발을 추진하여 부지조성을 끝내고 분양과 처분 등으로 개발이익만 챙기고, 의도적으로 공장이전이나 산업투자는 지연하는 등 원래의 기업 이전계획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우려된다"며 "민간복합도시가 순조롭게 개발된 이후라 하더라도, 차후에 지역에 이전한 기업이나 그 기업의 주력산업이 쇠퇴할 경우 곧바로 도시경제의 위기로 닥칠 위험이 일반도시보다 더 크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주제발표에 이은 종합토론에서 토론자로 나선 박완기 경실련 사무국장은 "토지수용권이란 공공목적에 국한해 부여할 수 있는 권한"이라며 "기업의 영리가 목적인 기업도시에서 민간에게 토지수용권을 부여하는 것은 사유재산권에 대한 근본적 침해행위로 법 제정시에는 위헌소송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기업도시법의 '위헌성'을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기업도시 조성과정에서 70%의 개발이익을 환수하도록 했다지만 이는 조성단계의 개발이익만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정부 주장의 허구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수도권 택지개발 이익을 추정한 결과 평균 8천2백억원의 개발 이익 중 택지조성단계의 개발이익은 1천3백억원 정도로, 전체 개발이익의 1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개발이익환수장치는 토지수용,개발,개발이후의 판매,운영까지 전과정의 개발이익을 환수하는 것으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이규황 전경련 전무는 "개발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은 과거의 패턴을 생각한 오해"라고 주장했다. 그는 "실업자 특히 청년실업자가 많은데,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기업투자가 절실하며 기업도시는 산.학.연과 지자체를 네트워크화하는 최대의 공공재"라면서 "도시라는 공공재 건설에 개발 주체가 누구냐는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기업도시에 출자총액제한이나 신용공여한도 등을 풀어주지 않고는 투자할 여력이 있는 기업은 거의 없다"면서 대폭적인 금융 규제완화를 거듭 요구했다. 그는 또 "기업도시의 가장 중요한 자원이라고 할 수 있는 양질의 인적자원을 공급하기 위해 기업도시내에는 경쟁력 있는 교육을 위해 자율적인 교육기관 설립을 허용해줘야 한다"면서 "거주의 안전성과 쾌적성을 위해 의료기관 설립에도 파격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교육, 의료 특혜를 거듭 요구했다. 그는 고용제도에서도 "도시의 흥망이 기업과 밀접한 기업도시에서는 산업 안정성을 위해 파견근로와 대체근로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공청회에서 정부 못지않게 기업도시에 더 노골적 지지의사를 밝힌 것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의원들이었다.

공청회 며칠 뒤인 10월1일 국회에서 열린우리당 강봉균의원 등 여야 국회의원 20여명과 강동석 건설교통부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지역혁신-기업도시 정책포럼' 창립모임 겸 간담회장은 한마디로 누가 재계에 더 잘 보이는가를 다투는 듯한 경연장처럼 보였다.

우선 한나라당 이병석 의원은 "기업도시특별법의 모든 기조를 외국인 투자 유치를 기준으로 특혜라 할 만큼 혜택을 주고 기업 위주로 줘야 한다"며 전경련 요구의 전면 수용을 정부에 촉구했다. 이 의원은 "정부가 개입해 성공한 정책이 없고 민간 섹터는 이미 정부가 따라가지 못할 만큼 앞서 나가 있다"며 "모든 선택권을 줄 수 있는 한 기업에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도시 비난 여론에 대해 "주는 김에 홀딱 벗고 줘야 한다"고 주장해 물의를 빚은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 ⓒ연합뉴스


기자 출신인 같은 당의 최구식 의원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렸을 때부터 들은 말 중에 '주는 김에 홀딱 벗고 준다'는 말이 있는데 민간을 믿는 김에 좀 더 믿으면 좋겠다"는 주장을 펴기까지 했다. 최 의원은 "기업도시가 들어와 공공성을 해칠까 걱정한다지만 공익의 수호자인 지자체장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고 주장하며 "기업도시의 당사자인 지자체와 기업이 스스로 해결하도록 지켜볼 것"을 정부측에 주문했다.

한나라당에 뒤질세라 열린우리당의 이광재 의원도 "선의를 갖고 되는 쪽으로 협의해 나가야 한다"며 "개발이익의 공익성 보장도 법규제보다는 협의를 바탕으로 이뤄가자"고 제안해, 개발이익 제한 방침을 법제화하지 말고 지자체와 협의하에 처리토록 해 달라는 전경련의 요구를 전폭 지지했다.

같은 당 김종률 의원도 사회간접자본(SOC)투자에 소요되는 비용에만 출자총액제한을 제외토록 하고 있는 정부안에 대해서 "광범위한 예외를 인정하고 있는 마당에 개별적인 적용이 필요한 지 의문"이라고 반대입장을 밝힌 뒤, "융통성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혀, 투자금액 전체에 대한 출자총액제한 적용 제외를 요구하고 있는 재계와 태도를 같이 했다.

이처럼 여야 의원들이 전경련 요구 전폭 수용을 주장하고 나서자, 정부도 전경련안을 대폭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동석 건교부 장관은 당초 "전경련이 처음 기업도시를 제안해 왔을 때부터 정부는 노동유연성 문제와 환경규제 완화에 대한 요구는 받아들이기가 어렵다고 밝힌 바 있고 토지 수용권의 경우에는 시민사회단체에서 오히려 과도한 특혜로 재벌에게 투기의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며 전경련의 요구에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의원들과 토론하는 과정에서 강 장관은 "공청회를 해 보니 지자체장들은 기업의 자율권을 좀 더 확대해도 된다는 열린 의견을 갖고 있었다"며 "노동-환경을 제외한 나머지 견해차이는 국회 심의 과정에서 공청회 등을 거치며 수렴될 수도 있다고 본다"고 한 걸음 물러서는 모양새를 보였다.

이날 모임의 회장으로 간담회 사회를 맡은 열린우리당 강봉균 의원은 "정부안도 있지만 여야 의원 공동 발의로 정기국회를 통과시키면 어떨까 한다"며 "여야의 협력 아래 이번 국회 통과도 어렵지 않다고 본다."고 말해, 다른 사안에 대해선 여야가 사사건건 대립하던 것과는 180도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이날 공청회를 지켜본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시쳇말로 얼굴에 철판을 깔고 재벌 대변에 나선 모양새였다”며, 양당 공조를 ‘철판 공조’라 비아냥대기도 했다.(<참여정권, 건설족 덫에 걸리다> 1백79~1백94쪽)
박태견 대표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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