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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된 반동', 10.29대책 무력화

[盧정권의 부동산 망국사] <6> '따로부동산세' 만든 열린당

문광부의 전방위 '골프 경기부양' 지원사격

이헌재의 ‘골프 부양론’에 적극 나선 것은 재경부나 건교부뿐만이 아니었다. 문화관광부도 ‘골프 부양론’에 적극 동조하며 지원사격에 나섰다.

문광부는 9월22일 골프장 부지 면적 제한 폐지와 교통영향평가 대상 축소, 각종 구비서류 간소화, 관련 기관 협의 절차를 줄이는 것을 뼈대로 하는 대대적 골프장 건설 규제 개선 방안을 내놓았다.

문광부는 우선 골프장을 어디나 쉽게 지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문광부는 "주로 산을 깎아 골프장을 짓던 관행이 환경에 악영향을 주고 있어 앞으로는 대규모 골프장과 숙박 시설이 함께 들어서는 관광ㆍ레저형 복합 단지를 조성해 골프장의 난립을 막겠다"며 "서해안 간척지와 매립지, 그리고 골프장 건설이 불가능했던 농림지역 가운데 생산 기반이 취약한 한계농지 등에도 골프장을 짓기로 했다"고 밝혀 전남 무안-영암, 전북 새만금 등 간척지에의 무더기 골프장 허가를 사실상 기정사실화했다. 정부는 또 “어업환경과 수자원 보호를 명목으로 골프장이 들어서기 어려웠던 해변 구릉지도 입지 가능한 곳으로 바꿀 계획”이라고 덧붙여, 해안지대 골프장 허가도 예고했다.

정부의 이런 방침은 외견상 ‘골프장 난립’을 막기 위한 것인 양 비쳤으나 실제 내막은 그렇지 않았다. 기존에 골프장이 들어섰던 구릉 지역의 경우 더이상 골프장 신설이 불가능할 정도여서, 건설업자들은 그동안 간척지를 비롯해 해안지대 골프장 허가를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문광부는 골프장 관련 규정도 대폭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문광부는 현행 18홀 기준 1백8만㎡로 일률적으로 규정돼 있는 부지 면적 규정을 폐지하고, 대신 자연 지형에 맞는 코스를 조성할 수 있는 길을 터 주었다. 아울러 클럽하우스 면적 제한(18홀 기준 3천3백㎡ 이내)와 코스 길이 제한 등도 모두 없애기로 해 전남-전북도가 요구하는 수백홀 규모의 매머드급 대형 골프장이 자유롭게 건립되는 길을 열어 주었다.

인허가 관련 규제도 대폭 줄여 시장, 군수를 거쳐 시ㆍ도지사가 처리하도록 돼 있는 사업 계획 승인을 시ㆍ도지사가 직접 처리하도록 바꿔, 신속한 인허가가 가능토록 했다. 이럴 경우 골프장 건설에 소요되는 행정 절차 기간이 평균 3~4년에서 1~2년으로 줄어들고, 건설 비용도 1곳당 37억원이 절감될 것이라고 문광부는 밝혔다.

문광부는 또 도시 관리 계획 수립 절차에서 시ㆍ군의회 의견 청취 제도를 폐지하고, 교통영향평가 대상도 18홀 30만평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각종 구비 서류도 감축해 인ㆍ허가 기관에서 자체 확인할 수 있는 구비서류 29건을 없애기로 했다.

골프장 관련 세금도 대폭 낮춰, 현행 10%인 취득세를 탄력적으로 적용하도록 해 2~4%의 일반세율 수준으로 낮추는 동시에 회원제 골프장 입장시 1인당 1만2천원씩 부과하던 특별소비세도 지방세로 이양해 세금 감면의 길을 열어주었다.

말 그대로 전면적 골프 부양 지원사격이었다.

이헌재 부총리의 '확고한 부동산 경기부양' 메시지를 읽은 건설업계와 투기세력은 또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2004년 6월부터 10.29 대책후 멈칫했던 아파트 매매값이 기지개를 켜며 하락세에서 벗어나 반등하며 매매건수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4년 6월'은 이헌재 부총리가 건설업계 대표들과 긴급회동후 노골적으로 부동산 경기부양을 펼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아파트 값이 꿈틀대기 시작한 것보다 당시 더 심각했던 것은 전국의 땅값 폭등이었다. 이미 행정수도 이전지인 충청남도의 땅값은 종전 가격보다 3~5배나 대폭등하고 있었으며, ‘골프 부양론’ 등 이헌재의 노골적 부동산 경기부양책에 자극받은 전국의 땅값이 일제히 급등하기 시작했다. 전임 김진표 경제팀이 경기부양책으로 주로 ‘아파트값 폭등’을 초래했다면, 이헌재 경제팀은 ‘땅값 폭등’을 초래한 것이다.

이헌재의 ‘10.29-종합부동산세’ 무력화

부동산 재폭등을 알리는 분명한 적신호가 켜졌음에도 불구하고 5% 성장률 달성에 연연하던 이헌재 경제팀은 ‘건설경기 연착륙’을 명분으로 지방의 투기지역을 잇따라 해제하는 등 ‘10.29 대책’을 하나씩 무력화시켜 나갔다.

정부는 8월20일 김광림 재정경제부차관 주재로 부동산가격안정심의위회를 열고 부산 북구.해운대구, 대구 서구.중구.수성구, 강원도 춘천시, 경남 양산시 등 7곳을 주택투기지역에서 해제했다. 주택투기지역 지정이 시행된 이후 해제조치가 단행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에 따라 주택투기지역은 57곳에서 50곳으로 줄게 됐고, 이들 지역에서는 우려대로 아파트값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정부 조치는 "지방 부동산 시장은 살리고 서울 및 수도권은 현상을 유지한다"는 방침에 따른 것으로, 강동석 건설교통부장관은 노골적으로 “지방광역시를 중심으로 투기과열지구 해제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앞서 이해찬 국무총리는 8월13일 열린우리당 대전-충청 지역 의원들과 가진 만찬 회동에서 “수도권과 충청권을 제외한 전국의 부동산 규제를 풀겠다”고 밝혀, 참여 정부가 범정부 차원에서 전날 단행한 한국은행의 콜 금리 인하에 발맞춰 대대적 부동산 경기부양에 나서기로 방침을 굳혔음을 분명히 했다.

특히 지방 부동산 경기 활성화 정책은 노무현 대통령이 8월11일 “부동산정책 추진주체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종전에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위원장 이정우)가 맡고 있던 부동산정책의 총괄 조정기능을 새롭게 신설된 부동산정책 분과위원회로 넘기고 그 실무운영을 재정경제부가 맡도록 한 시점과도 일치해 노 대통령의 의중이 담긴 것으로 해석했다. 분배 기능을 중시하는 이정우 위원장은 대표적 성장론자인 이헌재 경제부총리 취임후 사사건건 충돌해 오다가, 노 대통령이 이 부총리 손을 들어주는 쪽으로 교통정리가 된 것이다.

정부는 그후에도 2004년 12월 2차, 2005년 1월 3차에 걸쳐 지방뿐 아니라 이번에는 서울의 투기지역까지도 잇따라 해제, 2005년 1월말 투기지역은 31개로 급감했다. 그러나 그후 이들 해제 지역의 아파트값이 재폭등하자 얼마 뒤 다시 이들 지역을 투기지역으로 재지정하는 ‘갈팡질팡’ 블랙코미디가 재연됐다.

한편 이정우 실장과의 힘겨루기 끝에 부동산 정책의 전권을 쥔 이헌재 경제팀은 ‘10.29 대책’ 무력화에 그치지 않고, 정부여당이 국민에게 반드시 연내에 입법하겠다며 여러 차례 약속했던 ‘종합부동산세 도입’ 방침도 하나씩 무력화시켜 나갔다. 종합부동산세란 “그동안 따로 세금을 부과해온 주택과 토지를 개인별로 합산과세해 부동산 과다보유자에 대해 세금을 중과하고 투기혐의가 짙은 비거주 주택에 대해서는 최고세율의 세금을 누진 부과하겠다”는 요지의 투기대책 중 하나였다.

하지만 재경부는 애당초 종합부동산세 도입 자체에 부정적이었다. 한 예로 2004년 5월31일 이종규 재경부 세제실장은 종합부동산세 개편 방안을 발표하면서, “주택과 토지를 한꺼번에 합해 과세할 경우 세부담이 크게 늘고, 주택과 토지를 한꺼번에 통합 과세하려면 기술적으로도 어렵다”는 이유로 “중장기 과제로 돌렸다”고 밝혀 여론의 거센 반발을 샀다. 다음날인 6월1일 발표된 열린우리당의 ‘분양원가 공개’ 공약 백지화로 국민 분노가 폭발하자, 정부여당은 말을 바꿔 ‘종합부동산세 연내 입법’을 약속했으나 주무부처인 재경부에게는 처음부터 종합부동산세를 강화할 의지가 없었다.

재경부 속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한 사례가 종합부동산세 실무기획단에 서울 강남구 등 시군구 대표 3명을 참여시킨 것이었다. 이는 공청회 등에서 종합부동산세 도입에 반대하는 지자체의 의견을 반영해 조세마찰을 줄이겠다는 것이었으나, 사실상 종합부동산세 완화를 의미하는 사인으로 받아들여졌다. 세간에는 “참여정부에 '여러분이 대통령‘이라던 국민은 배제되고 기득권층만 참여하는 꼴”이라는 비아냥이 나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경부는 국민의 소리를 못 들은 척, 부동산 경기부양에만 올인할 뿐이었다.

열린우리당, ‘종합부동산세’를 ‘따로부동산세’로 만들다

이 과정에 더욱 ‘블랙코미디’는 당초 ‘종합부동산세’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열린우리당이 실상은 재경부보다도 더 종합부동산세 도입에 부정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초대 재경원장 출신의 홍재형 열린우리당 의원은 종합부동산세 후퇴 및 아파트 분양원가 공약 백지화 등을 추진한 대표적 건설족이었다. ⓒ연합뉴스


열린우리당과 재정경제부는 10월4일 홍재형 정책위의장과 이헌재 경제부총리,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당정협의를 갖고 종합부동산세 재정을 골자로 하는 '부동산 보유세제 개편안'을 확정 발표했다. 이날 개편안은 상류층의 조세 저항을 우려한 열린우리당의 반대로 당초 과세대상자가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인상액도 당초안보다 대폭 낮춰진 것이었다.

당정은 국세인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 기준을 주택은 국세청 기준시가를 기준으로 9억원, 나대지는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6억원, 빌딩, 상가, 사무실 등 사업용 토지는 공시지가 기준으로 40억원으로 정했다. 과세 기준은 2005년 6월 기준이다.

재경부 이종규 세제실장은 "국세청 기준시가가 실제 시가의 90%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실제시가 10억원 이상 주택 소유자에게 종합부동산세가 부가될 것"이라며 "과세 대상자수는 대략 6만명 안팎 수준이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는 '주택 5억원(기준시가) 이상 보유자 10만명 대상'이라는 당초 정부가 마련한 초안에서의 과세 대상자에서 절반 정도 줄어든 것이다.(그러나 그 다음해 1월 건교부가 발표한 ‘주택가격’ 공시에 따르면, 종부세 대상자는 그보다 절반도 안되는 3만~3만5천 가구밖에 안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당정은 또 종합부동산세 도입에 앞서 조세 저항을 줄이기 위해 거래세를 인하하기로 했다. 2005년 1월부터 부동산 등록세는 현행 5%에서 4%로 1%포인트 인하되고, 추가로 행정자치부가 각 시도가 자체 여건에 맞춰 지방세인 거래세를 추가 인하토록 함에 따라 거래세 인하폭은 시도에 따라 1%포인트 이상이 추가로 인하돼, 거래세가 현재보다 절반 가까이 인하되는 셈이었다. 당정은 또 보유세제의 개편으로 세부담이 급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개별세 부담 증가 상한선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2005년의 세부담이 금년 부담액의 50%를 넘지 않도록 하고 2006년 이후에도 전년대비 50% 이상 세부담이 증가하지 않도록 상한선을 정한 것이다.

이날 당정이 합의한 종합부동산세는 말만 '종합 부동산세'였지, 실제로는 '따로 부동산세'였다. 주택과 나대지, 사업용 토지를 합산과세하지 않고 따로따로 과세하는 방식을 채택해, 부동산 부자들이 빠져나갈 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준시가 9억원짜리 아파트 1채만 갖고 있어도 종부세를 내야 하는 반면, 8억5천만원짜리 집과 5억5천만원짜리 나대지, 39억원짜리 사업용 토지를 갖고 있는 사람(개인사업자)은 총 53억원의 부동산을 갖고 있는데도 과세대상에서 제외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아울러 부부 합산과세도 하지 않기로 해 1가구 다주택자들이 빠져나갈 길도 열어주었다.

당정은 “종부세 도입에 따라 2005년 보유세액이 금년보다 10% 정도 증가한 3조5천억원으로 추계된다”고 말해, 스스로 이번 대책이 대국민 기만용일뿐 상류층에게는 특별한 부담이 되지 않는 형식적 조치임을 토로했다.

더욱 코미디는 이 정도 ‘차 떼고 포 뗀 위장개혁안'조차 열린우리당 의총에서 “경제회복에 악영향을 끼칠 게 확실하고, 강남의 조세저항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반대여론이 거세 연말 국회에서 간신히 통과될 때까지 두달여 동안 진통을 겪었다는 사실이다. 열린우리당의 어지러운 ‘정체성’이 또 한차례 그 실체를 드러낸 현장이었다.

이헌재 경제팀과 열린우리당의 ‘합작 코미디’는 이미 ‘분양원가 공약 백지화’에서 배신감을 느낀 국민 다수에게 또다시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당시 국민이 느낀 배신감과 절망감이 얼마나 컸던가를 잘 보여주는 한 글이 있다. 김경수 명지대 교수가 당정의 종부세 발표 얼마 뒤인 그해 10월17일 <한국일보>에 기고한 ‘부의 정통성 원하다면’이란 제목의 칼럼이 그것이다.

김 교수는 칼럼을 통해 "지난 주 언론에 보도된 뉴스 가운데 유난히 세인의 눈길을 끈 두 기사가 있다"며 "하나는 경기불황에도 불구하고 1천만원짜리 백화점 상품권이 불티나게 팔렸다는 기사이고, 다른 하나는 50대 가장이 병원비가 겁나 집에서 낙상한 상처를 바느질실로 직접 꿰맸다가 상처가 덧나 부득이 극빈자 진료소를 찾게 됐다는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김 교수는 이어 "세계 경제대국 10위권에 진입하고, 선진국클럽이라고 하는 OECD에 가입한 지도 10여년이 돼가는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에 대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참담한 심경을 토로했다.

김 교수는 문제의 종합부동세안과 관련, "종부세의 경우 '종합'이란 말에 걸맞지 않게 가구별 합산 대신 개인별로 과세한다든지 주택과 나대지, 사업용 토지를 합산과세하지 않고 따로따로 과세토록 함으로써 진짜 부자가 빠져나갈 구멍은 모두 마련된 상태"라고 질타했다.그는 구체적으로 "일례로 9억짜리 아파트 한채뿐인 사람은 과세대상이고 8억 집에 5억 나대지, 30억 사업용 땅 등 도합 52억원의 막대한 부동산을 가진 사람은 과세대상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히 잘못"이라며 "개인별 과세이다 보니 이론상 부부의 경우 최대 1백4억원의 재산을 가지고도 종부세를 한푼도 안낼 수 있다는 것은 조세정의 구현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주택만 가지고 있는 경우라 할지라도 부부가 공동명의로 소유할 경우 기준시가 18억원이 넘지 않는 집은 아예 종부세 대상이 안 되는 것도 큰 문제"라며 "실제로 시가 25억원 내외의 집은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식으로 새 세제의 허점을 이용해 빠져나간다면 종부세 도입 취지가 무색해지는 것은 아닌가 심히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는 "형평과세는 경제민주화, 즉 부의 정통성을 세우는 지름길이며 우리의 취약한 사회보장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최우선 순위를 두어 추진해야 할 역점과제가 아닐 수 없다"며 가진자의 눈치만 보고 있는 정부여당을 신랄히 질타했다.

당시 서울 동부 이촌동에 살고 있는 한 고위 금융인도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경우 지난 1년여 동안 평당 2천만원 하던 집이 3천만원으로 올라 가구당 평균 7억원정도의 불로소득을 취했음에도 최근 세금이 몇십만원이 오른다고 하니 이를 묵과할 수 없다며 반상회를 소집하자고 하는 등 난리가 아니다"라며 "가진 이들이 이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한 한국의 미래는 없다"고 탄식했다.

참여정부와 집권여당이 “조세정의 차원”에서 행했다고 주장한 종합부동산세 개혁의 실체가 이러니, 전국에서 부동산 투기가 거세게 부활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부동산투기 재연에 이헌재 희희낙락하다

우려대로 2004년 하반기 전국 90%의 땅값이 폭등할 정도로 부동산투기는 전국적 규모로 무섭게 재연됐다. 그러나 부동산값 재폭등 못지않게 심각한 사태는 이헌재 부총리가 부동산값 재폭등을 걱정하기는커녕 도리어 '긍정적 사인'이자 ‘자신의 업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서울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재차 폭등한 것을 신호탄으로 부동산 투기가 분명히 재연된 2005년 2월4일 이 부총리는 정례브리핑을 통해 "부동산경기가 위축세를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강남 재건축단지도 오히려 너무 빨리 뜨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격이 회복되고 있다"고 만족감을 표시해, 아파트값 폭등에 대한 위기감이 전무함을 드러냈다. 그는 노골적으로 "아파트 가격이 최근 2개월간 평균 1천만원씩 올라가고 있다"고 아파트값 급등에 만족감을 표시하면서 "미분양아파트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자랑했다.

이처럼 재임기간 동안 오로지 부동산 경기부양에 올인하던 이헌재 부총리는 과거에 경기도 광주지역에 위장전입 등의 탈법적 수단으로 수만평 규모의 부동산투기를 했으며 거액의 양도소득세를 탈루한 의혹이 드러나면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됐다. 당연히 “이헌재에게 더 이상 부동산 정책을 맡길 수 없다”는 교체 여론이 거세게 일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동안 유임을 희망하는 듯한 인상을 풍기던 그는 2005년 3월7일 불명예 퇴진을 해야만 했다. “말로 흥한 자는 말로 망하고,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한다”는 가르침을 떠올리게 하는, 역사의 무서운 아이러니였다.

이헌재는 비록 불명예 퇴진했지만 '골프 경기부양론'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정부안에 굳건히 살아있다. 건설족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부총리 퇴진 두달 뒤인 2005년 5월20일 박병원 당시 재정경제부 차관보(현 재경차관)는 과천정부종합청사에서 한덕수 부총리를 대신해 가진 정례브리핑에서 "1.4분기 성장률이 2.7%에 그쳤음에도 불구하고 하반기에도 경제운용계획을 짤 때 5%를 타깃으로 하는 정책을 고수하겠느냐"는 물음에 대해 "그렇다. 정부는 올해 5% 성장 달성을 위해 모든 거시·미시적 정책수단을 동원할 것"이라며 특히 부동산 경기부양에 전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구체적 개발사업의 예로 "골프장이 1백개만 들어서도 지방 건설업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며 "그러나 지방자체단체들이 환경단체 등 NGO(비정부기구) 영향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해, 골프장 경기부양에 반대하고 있는 NGO 등에 강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헌재의 뒤를 이어 경제부총리가 된 한덕수 부총리도 얼마 뒤인 8월8일 재경부 간부회의에서 "규제개혁의 일환으로 실시되고 있는 골프장 건설 규제완화가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 현장점검을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정부의 규제완화에도 불구하고 업계 집계상 전국 2백여곳에 건설되고 있는 골프장 중 실제로 완공된 곳이 거의 없는 등 실질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은 데 따른 것”이라고 재경부측은 부연설명했다.

한 부총리는 취임후 성장률 중심의 정책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혀왔었다. 한 예로 부총리 취임후 가진 시민대표들과의 만남에서 김성춘 경실련 대표가 "경제정책 면에서 수량적 목표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부동산 투기를 유인하는 등 자승자박의 결과를 가져온다"고 조언하자 이에 대한 공감을 나타나기도 했다. 또한 앞서 5월 열린우리당 워크숍에서 “우리 경제가 일본과 같은 장기침체의 늪에 빠질 소지도 배제하기 어렵다”며 솔직하게 부동산 거품에 대한 강한 경계심을 피력하기도 했었다.

그러던 한 부총리도 경기침체가 계속되며 경기부양에 대한 압박이 사방에서 몰려들자 끝내 이헌재의 ‘골프 경기부양’에 동참하기에 이른 것이다. 목전의 단기성과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관료들의 태생적 한계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였다.(<참여정권, 건설족 덫에 걸리다> 1백65~1백76쪽)
박태견 대표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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