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서남표는 충실한 꼭두각시였을 뿐"
"정말 손가락질 받아야 할 것은 서남표에게 갈채 보낸 사람들"
이준구 교수는 이날 자신의 홈피에 올린 <KAIST 사태, 정말로 손가락질 받아야 할 사람은?>이란 글을 통해 서 총장의 '징벌적 등록금제', '100% 영어강의'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뒤 이같이 말했다.
그는 "문제가 터지자 모두가 KAIST의 오늘이 있게 만든 주역 서남표 총장 한 사람에게만 손가락질을 한다. 물론 그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정말로 손가락질을 받아야 할 것은 징벌적 등록금제와 100% 영어 강의가 무슨 대단한 개혁이나 되는 양 뒤에서 열렬한 갈채를 보낸 사람들의 무리"라며 "그런 사람들의 굳건한 뒷받침이 없었다면 서 총장 혼자만의 힘으로 그런 무리수를 감히 실행에 옮길 수 있었을까?"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는 더 나아가 "이것을 KAIST만의 문제로 한정해 인식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다른 모든 대학들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거의 모든 대학들이 영어강의를 실시하면서 이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을 절대평가라는 사기적 방법에 의해 무마하고 있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그 사이에 대학 교육은 골병이 들어가고 있는데도, 이에 대한 뼈저린 반성은 그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번 사건이 대학교육 전반의 비(非)교육적 악습을 뿌리 뽑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며 모든 대학의 자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더불어 그는 "최근 들어 우리 사회가 부쩍 더 각박해졌다고 느끼는 사람이 나 하나뿐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우리 모두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야 마땅한 일"이라며 "경쟁에 이긴다고 해서 행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닌데, 너무나 경쟁만을 강조해온 것은 아닌지? 경쟁에 뒤떨어진 사람을 안아 보듬어줘야 하는데, 오히려 그들에게 손가락질을 해온 것은 아닌지? 아이들에게 이웃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가르쳐 주지 않고 오직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만 가르쳐준 것은 아닌지?"라며 우리 사회 전체의 각성을 촉구했다.

다음은 이 교수의 글 전문.
KAIST 사태, 정말로 손가락질 받아야 할 사람은?
요즈음 우리 사회에 자신의 목숨을 끊는 젊은이들이 부쩍 많아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우리 기성세대의 책임이 크다는 자책감 때문이 마음이 몹시 무거워진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유난히 불안감이 크고, 사소한 일에도 크게 마음을 상하기 일쑤다. 이런 사정을 이해해 주기는커녕 살벌한 경쟁판으로 내몰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어른들이 원망스럽기에 그런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었으리라. 최근 KAIST에서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그런 불행한 일이 일어난 것도 이런 일반적인 추세와 무관하지 않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KAIST에서 일어난 연쇄자살 사건은 단순한 개인적 고뇌의 차원을 넘어 시스템 그 자체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특별한 관심을 끈다. 솔직히 말해 나는 KAIST를 몇 번 방문한 것이 고작이어서 거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언론매체를 통해 파악한 바로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 같았다. 특히 우리나라 최고 엘리트라는 그곳의 학생들 중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는 기사를 읽고 무언가 잘못 되어도 크게 잘못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위 ‘징벌적 등록금제’라는 반(反)교육적 정책만 해도 그렇다. 교육자라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공부에 흥미를 느끼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당근과 몽둥이를 휘둘러 공부를 강요하는 것은 진정한 교육자의 자세가 아니다. 설사 사회가 그런 반교육적인 정책의 채택을 강요한다 하더라도 대학이 온몸으로 이를 막아줘야 한다. 그런데 개혁이라는 명문을 내걸고 대학이 앞장서서 그런 반교육적인 정책을 도입했으니 이만저만 심각한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다른 부작용은 차치하고라도, 징벌적 등록금제는 강요된 공부를 해야만 하는 학생들로 가득찬 불행한 캠퍼스를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나는 징벌적 등록금 징수에 내포되어 있는 장학(?學) 철학에 대해서도 강한 반감을 갖고 있다. 다른 모든 학생이 등록금 면제의 혜택을 받고 평점 3.0 미만의 학생만 등록금을 내야 한다는 것은 평점 3.0 이상의 학생에게만 장학금을 준다는 것과 똑같은 뜻이다. 평점이 3.2인 학생은 부모가 대기업 임원이든 변호사든 상관없이 장학금을 받는 한편, 2.7인 학생은 부모가 가난한 농민이라 할지라도 장학금을 못 받는다는 말이다.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무릇 장학금이란 집안이 가난해 어려움을 겪는 학생에게 우선적으로 지급되어야 마땅한 일이다.
아주 성적이 좋은 몇몇 학생에게 격려의 뜻으로 장학금 주는 것을 구태여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런 격려가 다른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의 경제적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성적만을 기준으로 장학금 수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전혀 교육적이지 못하다. 교육적 견지에서 볼 때 장학금 배정의 가장 핵심적인 기준은 어디까지나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어야만 한다. 성적이 조금 나쁘다는 이유로 가난한 가정의 자제에게 장학금을 박탈하겠다는 위협을 가하는 것은 교육자가 할 일이 아니다. 장학금이 무엇이며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의 빈곤이 그런 나쁜 정책의 채택을 가져오
게 된 근본원인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KAIST가 자랑거리로 삼아 왔던 100% 영어강의가 학생들을 불행하게 만든 또 하나의 핵심 요인이라고 한다. 나는 그런 엉터리 같은 제도하에서 학생들이 행복하게 느낀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천하의 수재가 모였다 해도 자막 없는 미국 영화 보면 절반도 채 알아듣지 못하는 학생이 대부분일 것이 틀림없다. 그런 사람이 영어 강의 들을 때는 갑자기 귀가 뚫려 강의 내용을 모두 다 알아들을 리 만무하다. 더군다나 처음 배우는 내용은 우리말로 강의해도 이해하기 힘든데 그걸 영어로 듣고 완전히 이해한다면 기적이 일어난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공부가 즐겁지 않은데 영어 강의까지 들어야 한다면 학생 입장에서는 거의 고문을 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게다. 공부를 해본 사람은 누구나 잘 아는 일이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강의를 듣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일은 없다. 도대체 영어로 강의하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기에 학생들에게 그런 불필요한 고통을 안겨 줘야 한다는 말인가? 이미 여러번에 걸쳐 영어로 진행되는 강의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지만,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 대학교육을 망치는 주범 중의 하나가 바로 그 영어 강의다. 우리 대학들의 영어 강의에 대한 집착은 사대주의, 허영심, (대학순위를 높이려는) 공명심 이외의 것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미스테리다.
문제가 터지자 모두가 KAIST의 오늘이 있게 만든 주역 서남표 총장 한 사람에게만 손가락질을 한다. 물론 그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정말로 손가락질을 받아야 할 것은 징벌적 등록금제와 100% 영어 강의가 무슨 대단한 개혁이나 되는 양 뒤에서 열렬한 갈채를 보낸 사람들의 무리다. 그런 사람들의 굳건한 뒷받침이 없었다면 서 총장 혼자만의 힘으로 그런 무리수를 감히 실행에 옮길 수 있었을까? 어찌 보면 서 총장은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개혁이라고 부르짖는 군중의 환호소리에 충실히 따라 움직인 꼭두각시인지도 모른다.
뒤늦게나마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징벌적 등록금제와 100% 영어강의를 재고하겠다고 나선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그러나 이것을 KAIST만의 문제로 한정해 인식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다른 모든 대학들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거의 모든 대학들이 영어강의를 실시하면서 이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을 절대평가라는 사기적 방법에 의해 무마하고 있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그 사이에 대학 교육은 골병이 들어가고 있는데도, 이에 대한 뼈저린 반성은 그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번 사건이 대학교육 전반의 비(非)교육적 악습을 뿌리 뽑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대학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팽배해 있는 경쟁 만능, 효율성 만능의 병폐도 함께 뿌리를 뽑아야 한다. 경쟁이 소용없고, 효율성이 쓸모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들이 얼마든지 많다. 경쟁이 중요하나 상부상조의 정신 또한 중요하고, 효율성이 중요하나 공평성 또한 중요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경쟁만이 그리고 효율성만이 중요하다는 잘못된 생각이 뿌리 내리기 시작했다. 이번 KAIST 사태는 이런 잘못된 풍조가 만들어낸 병폐의 한 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가 부쩍 더 각박해졌다고 느끼는 사람이 나 하나뿐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우리 모두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야 마땅한 일이다. 경쟁에 이긴다고 해서 행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닌데, 너무나 경쟁만을 강조해온 것은 아닌지? 경쟁에 뒤떨어진 사람을 안아 보듬어줘야 하는데, 오히려 그들에게 손가락질을 해온 것은 아닌지? 아이들에게 이웃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가르쳐 주지 않고 오직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만 가르쳐준 것은 아닌지? 이번의 불행한 사건이 우리의 대오각성을 가져오는 계기가 된다면 그나마 작은 위안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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