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에 맞선 '참군인' 장태완, 별세
12.12때 '전두환 반란' 진압하려다가 고초 치루기도
고인은 육군종합학교를 졸업했으며, 육군본부 군사연구실장, 교육참모부 차장 등을 거쳐 수도경비사령관에 올랐으나, 79년 12.12 사태시 신군부측의 행위를 "반란"으로 규정한 뒤 이를 진압하려다가 실패했다.
신군부 진압에 실패한 그는 보안사령부에 체포돼 서빙고분실에서 두 달간의 조사를 받고 풀려났으나, 가택연금 및 강제예편을 당해야 했다.
그는 1993년 당시 민주당 `12.12쿠데타 진상조사위'를 통해 공개증언에 나서 신군부의 반란행위를 상세히 증언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하나회원들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납치했을 때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며 "그러나 진압 책임을 맡은 내가 백기를 들 수는 없었고, 죽기로 결심하니까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 회고했다.
고인은 1994년 최초의 자유경선에 의해 재향군인회장으로 당선, 6년간 재향군인회를 이끌었으며, 2000년 3월 민주당에 입당, 같은 해 16대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기도 했다. 고인은 이후 민주당 최고위원으로서 당시 여당 지도부의 일원으로 활약했고, 2002년에는 노무현 대통령후보 보훈특보를 지내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인 이병호씨와 딸 현리씨, 사위 박용찬(인터젠 대표)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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