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달러 약발' 단 하루, 유로 위기 재연
아시아증시 동반하락, 1조달러→유로 하락→환투기 재연
'1조달러' 약발, 하룻만에 시들
유럽의 대책 발표뒤 10일(현지시간) 유럽과 미국 주가는 기록적 폭등세를 보였다. '1조달러'라는 사상초유의 슈퍼울트라 대책이 던진 효과였다. 그러나 채 하루도 안 지나, 시장은 냉정을 되찾는 분위기다.
아시아 증시는 전날 밤 유럽-미국 증시가 폭등세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하락했다. 우리나라의 코스피지수는 7.39포인트(0.44%) 내린 1,670.24에 거래를 마쳤고, 일본 닛케이지수는 1.14%, 대만 가권지수는 0.73% 내렸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도 전날보다 51.18포인트(1.90%) 떨어진 2,647.57을 기록하며 1년래 최저치로 떨어졌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유럽발 금융위기의 바로미터인 유로가 전거래일 대비 0.65% 하락한 1.2704달러를 기록, 대책 발표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이다.
유로가 다시 가치하락한다는 것은 유럽발 금융위기가 계속 진행형이란 의미다. 왜 이럴까.
독일-영국-프랑스, 동시적 '정치 불안'
지금 시장이 던지고 있는 가장 큰 의문은 '1조달러가 과연 실현가능한 계획이냐'는 거다.
EU(유럽연합)와 IMF(국제통화기금)가 발표한 7천500억유로(1조달러)는 지난 2007~2009년 미국발 금융위기때 미국정부가 내놓은 불량자산구제프로그램(TARP)보다도 더 큰 규모다. TARP 규모는 7천억달러였다. 이번 유럽대책은 이보다 3천억달러가 더 많은 사상최대 규모다.
7천500억유로가 약속대로 조달된다면 포르투갈, 아일랜드, 스페인 등 추가부도가 우려되는 3국의 위기는 넉넉히 막을 수 있다. 이들 3개국의 국가파산을 막기 위해 오는 2012년까지 필요한 돈은 4천440억유로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앞서 1천100억유로를 지원키로 한 그리스에 대한 추가지원까지 가능한 액수다.
또한 EU가 부담키로 한 5천억유로는 이 지역 역내총생산(GDP)의 6% 수준이어서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정적 문제는 이들 지원을 대부분 떠맡아야 할 유럽 주요국가들이 과연 '국내 비준'을 받을 수 있는가이다.
한 예로 가장 많은 지원을 해야 할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연정은 9일 실시된 북 라인-베스트팔리아주 상원 선거에서 패배했다. 이 지역은 유권자만 1천350만명이 등록돼 있으며 경제규모도 폴란드와 체코 공화국을 합친 것과 맞먹는 지역으로, 슈뢰더 전 총리는 지난 2005년에 이곳에서의 패배로 낙선되기도 했다.
독일언론들은 패인으로, 독일 국민 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메르켈 총리가 그리스 지원을 결정했기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그리스 지원 규모보다 5배 이상 되는 추가지원을 하기로 했으니, 향후 메르켈 총리가 이를 관철할 수 있을지가 의문시되는 것도 당연하다.
여기에다가 유럽 주요국 중 하나인 영국의 브라운 총리는 지난 6일 총선에서 참패한 책임을 지고 11일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나 총선에서 1당이 된 보수당 역시 과반수 획득에 성공하지 못하면서 연정구성을 둘러싸고 상당한 시한과 진통이 예상되며, 따라서 남유럽 지원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밖에 사르코지 프랑스대통령도 요즘 지지율 폭락으로 위기에 처하는 등, 유럽 주요국 대부분이 계속되는 경제위기에 따른 '정치적 리더십'이 크게 위태로운 상황이다. 요컨대 '정치적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경제적 불확실성'도 높아지는 악순환 고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긴급지원을 받는 나라들이 가혹한 긴축재정 정책을 취하지 않을 경우 지원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렇게 가다간 유로 휴지조각 된다"
보다 더 큰 의문은 유럽국가들이 약속한대로 1조달러 지원을 할 경우 몰아닥칠 후폭풍이다.
유럽중앙은행(ECB) 트리셰 총재는 유럽국가들이 지원하기 위해 발행할 유로 국채와 민간채를 사들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ECB 내부에서는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다.
한 예로 ECB 통화정책이사회 멤버인 독일 분데스방크의 악셀 베버 총재도 10일 "유로국채를 매입하는 것은 안정성에 심각한 위협을 제기하는 것"이라며 "이것 때문에 (ECB) 통화정책 기조가 훼손돼서는 안된다"라며 유로채 매입에 반대입장을 밝혔다.
트리셰 총재도 ECB의 국채 매입 결정에 통화정책이사회 멤버 22명이 모두 찬성한 것이 아님을 밝혀, 향후 본격적으로 유로채 매입에 나설 경우 강력한 반발에 직면할 것임을 예고했다. 유로채 매입 반대론자들은 ECB가 이처럼 무차별적으로 국채 매입에 돈을 풀 경우 유로가 과잉공급되면서 유로 가치가 폭락하고 환투기세력 공격이 재연되는 악순환에 빠져들 것을 우려하고 있다.
또한 무엇보다 큰 의문은 과연 이렇게 막대한 지원을 하더라도 과연 그리스 등 파산위기국가들이 단기간에 재생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확신 부재다. 한 예로 <로이터>가 애널리스트 54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긴급지원을 받는 그리스가 1년내 회생할 가능성은 20%에 불과했고 5년내에 회생할 가능성도 30%에 불과했다. 한번 국가재정이 망가지면 회생 가능성이 그만큼 낮다는 의미다.
따라서 유럽발 금융위기는 '1조달러 긴급투입 발표'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상당기간 지속되고 불안의 강도가 더 심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국제금융계 판단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우도 1997년말 IMF 긴급구제 금융이 발표된 후 잠시 반짝 주가가 반등하다가 그 후 길고 긴 폭락의 고통을 경험한 바 있다. 그 폭락은 수출 확대와 무역흑자 급증 등 실물경제 회복이 확인된 이후에야 비로소 멈췄다.
유럽발 재정위기의 갈 길은 앞으로도 멀고 험한 게 객관적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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