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판기'로 전락한 관변 연구기관들
<기자의눈> 나라 존립마저 위협하는 최악의 거짓말 '통계조작'
"한국행정연구원은 지난 5년 동안 어디 다른 나라에 있다 온 건가? 전혀 모르다가 갑자기 이렇게 나라가 망할 것처럼 얘기를 하나?"
"이제까지 행복도시 정상 추진을 전제로 157건의 용역이 있었다. 현 정부 들어와서도 81건, 전 정부에서만 76건의 용역이 있었다. 현 정부에서만 700억, 전 정부에서까지 합하면 용역비로만 총 1천320억원을 썼다. 주택공사도 122억원을 별도로 썼다. 이렇게 157건의 용역, 1천300억원 넘게 들여 조사한 용역은 필요없고, (세종시를 원안대로 하면) 이제 100조가 손해난다? 지금 직업 공무원들도 행복도시 추진 공무원 따로 있고, 백지화 추진 공무원 따로 있나?"
"용역이라는 게 자판기처럼 정권에 따라서 딱 주문해서 누르면 거기에 맞게 그런 결과가 나오나? 용역이 자판기냐? 이런 식으로 하면 국민들이 정부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신뢰를 하겠나?"
15일 오후 국회 예결특위에서 친박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이 쏟아낸 질타다. 국무총리실 산하 한국행정연구원이 전날 세종시 민관합동회의에서 세종시에 정부부처를 옮기면 향후 20년간 100조원의 손실이 예상된다는 보고서를 내놓은 데 대한 질타다.
앞서 민주당, 자유선진당 등 야당들도 5년 전인 2004년에는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 전신)가 정부부처 이전시 178조원의 이득이 예상된다는 보고서를 끄집어내, 행정연구원 주장의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권력 주문대로 보고서를 양산해내는 '자판기' 역할을 해온 관변연구단체들이 도마위에 오른 셈이다.
이정현 의원은 이런 질타로 질의를 마쳤다.
"대통령이든, 정권이든, 집권여당이든 신뢰를 한번 잃게 되면 그 불신을 다시 신뢰로 바꾸어 놓는 데는 100조가 아니라 1천조가 들어도 힘들고 어렵다. (정권의) 존립 자체가 끝나버릴 수도 있는 건데 그게 100조, 1천조 가지고 되겠나?"

소속 부처 주문대로 180도 다른 연구물 생산도
15일 또 다른 '자판기' 논란이 일었다. 영리병원 허용 여부를 놓고서다.
영리병원 허가를 놓고 대립중인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는 지난 5월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보건산업진흥원에 공동으로 연구용역을 줬고 이날 연구용역 결과를 발표했다. KDI는 재정부 산하, 보건산업진흥원은 보건부 산하 연구기관이다.
아니나 다를까, 정반대 결과가 나왔다. KDI는 영리병원을 도입하면 국민 의료비 부담이 2천560억원 줄어든다고 했고, 보건산업진흥원은 정반대로 4조3천억원의 부담이 생긴다고 발표했다.
원래는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결과물을 발표하려 했으나, 정반대 연구결과가 나오자 서둘러 이를 취소하고 각자 결과를 발표했다.
양 부처와 양 기관은 서로 자신들의 연구결과가 맞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민은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아득할 따름이다.
세가지 거짓말 중 최악의 거짓말 '통계'
대영제국 시절, 영국의 명총리 벤자민 디스레일리(1804~1881)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거짓말에는 세 종류가 있다. 거짓말(Lies), 환장할 거짓말(Damn Lies), 그리고 통계다."
디스레일리는 세 가지 거짓말 중에서 '통계 조작'을 최악의 거짓말로 규정했다. 그 폐해가 나라의 존립마저 뒤흔들 수 있을 정도로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관변연구단체들의 냄새나는 결과물은 많았다. YS정권 시절이던 1996년에도 KDI 등은 청와대 보고회의에서 "한국이 영국을 제치고 G7이 될 것"이라고 보고했다가 다음해 IMF사태를 맞았다. 보고서 발표 당시 영국언론들은 "어디 얼마나 잘나가나 보자"고 발끈했고, 다음해 IMF사태가 터지자 한국을 감정적으로 융단폭격했다.
'관변의 역사'는 길다. 치유 불능의 고질병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특히 요즘 들어 더 노골적이다. 국민의 눈은 거의 의식하지 않는 분위기다. 단지 권력의 눈치만 보는 모양새다. 이 정도면 정권이 바뀐 다음, 관변연구기관들을 싹 없애자는 얘기가 나와도 딱히 항변할 말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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