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한일합방..." vs 강창일 "친일파냐"
'왕차관' 박영준 혼쭐, 강창일 "역사공부도 제대로 안하고"
이날 오후 국회 예산결산위 회의에서 민주당 강창일 의원은 박영준 국무차장에게 일제에 강점당한 지 100주년이 되는 내년에 경술국치 기념행사를 할 계획이 있는지를 물은 뒤, "기념하기 싫은 기념일도 챙겨야 한다"며 정부의 행사 개최를 주문했다.
박 차장은 이때 치명적 실언을 했다. 강 의원의 질의에 답하기 위해 입을 열면서 "한일합방이…"라고 불쑥 말한 것. 한일합방이란 일제가 강점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식민지 용어'로, 해방 후 한동안 식민사관론자들이 사용하다가 국민적 질타를 받고 이제는 일본극우들이나 사용하는 용어다.
박 차장 발언을 접한 강 의원은 즉각 버럭 화를 내며 "합방이라는 말이 어디 있나"라고 질타했다. 강 의원은 "강제면 강제고 병합이면 병합이지, 대등한 관계에서 하는 게 합방 아니냐"며 "역사 공부를 제대로 한 것이냐. 어떻게 일본우익, 친일파 같은 말을 하면서 그 자리에 앉아 있나"라고 호통을 쳤다.
박 차장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듯 쩔쩔맸고 강 의원의 질타가 끝난 뒤에야 "용어가 틀린 것은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으나, 강 의원은 분이 안 풀린듯 "그런 머리를 갖고 있으니 그런 답변이 나온다"고 거듭 꾸짖었다.
박 차장은 그러나 실언을 사과하면서도 강 의원이 주문한 내년 경술국치 100주년 기념행사에 대해선 "국가가 국민들에게 역사적 교훈을 얻고자 하는 예산도 책정돼 있지만 건국기념일이라든지 국가적 행사를 대대적으로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생각한다"며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부정적 견해를 드러냈다. 실제로 정부는 4·19혁명 50주년,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 6·25전쟁 60주년,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내년에 6·25 기념행사만 정부사업으로 주관하고 나머지는 민간에 맡긴다는 방침이다.
강 의원은 그러자 "국민들에게 떠넘기지 말고 정부에서 논의하라"며 박 차장을 재차 꾸짖었다. 강 의원은 "중국도 난징대학살 관련 행사에 역대 주석들이 다 참여하고, 일본도 민주당 집권후 의원들이 별도의 조직을 새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가해자인 일본도 그러는데 우리가 이래서 되는가"라며 주변국의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의 안일한 역사인식을 질타했다.
그는 이어 "내년을 새로운 한일관계의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며 회의에 배석한 또 다른 실세 이재오 권익위원장에게 동의 여부를 물었고, 이 위원장도 "공감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운찬 총리의 '731부대' 실언에 이어 박영준 차장의 '한일합방' 발언에 이르기까지, 이명박 정부의 역사인식이 연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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