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용 "제가 부산, 문재인이 광주 출마", 盧 "만세!"
"빅4, 충성심 없는 사람은 제 살 길부터 찾더라
"정찬용 "제가 부산, 문재인이 광주 출마", 盧 "만세 만세"
그가 밝힌 비사 중 하나는 노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이던 지난 2004년 4월 총선때 자신과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의 출마를 희망했었다는 것. 하지만 당시 그와 문 수석 모두 출마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그해 2월 노 대통령과 문 수석 3인이 청와대 관저에서 저녁식사를 하던 중 노 대통령이 우회적으로 총선 출마를 희망하자, "대통령님, 방법은 딱 한 가지가 있습니다. 기왕 할 바에야 대통령님 필생의 신념인 지역주의 구도를 깨뜨리는 것까지 포함해서 하면 어떻겠습니까? 제가 부산에서, 문 수석이 광주에서 지역을 바꿔 교차출마하면 어떻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만세, 만세!"
정 수석 말이 끝나자마자 노 대통령은 두 손을 번쩍 치켜들고 용수철처럼 의자에서 튀어올랐다. 그러고는 "이것이 정답이다"하고 무릎을 치셨다고 그는 전했다.
그는 그러나 그후 대통령 탄핵 사태가 발생, 탄핵 역풍이 거세게 불면서 자신과 문 수석이 굳이 교차출마하는 '비상카드'를 쓸 필요가 없어져 출마는 없던 일이 됐다고 회고했다.
盧 "친구, 귀퉁이에서 빙빙 돌다 가면 정말 슬퍼"
그는 생전의 노 전 대통령을 마지막 만났을 때, 노 전 대통령이 했던 말도 전했다. 그가 마지막 만났던 날은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두하던 2009년 4월30일. 자신과 문재인, 유시민 등 10명 정도의 전직 장차관들을 사저 응접실에서 만난 노 전 대통령은 정치를 하지 말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치인의 길이 참으로 험난합니다. 끝없이 신세를 져야 하고 후원금을 얻어 써야 하는 것이 정치인의 숙명입니다.
후원회를 열면 구멍가게 하면서 어렵사리 몇십만원 쥐고 온 어릴 적 친구는 저쪽 귀퉁이에서 빙빙 돌다 돌아가고, 나는 돈 많은 사람들과 서 있어야 하는 것이 정말 슬펐습니다. 정치는 안하는 게 좋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문을 나서니 방안에서 권양숙 여사의 울음소리가 더욱 커졌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대통령이기 이전에 한 남편으로서 그 흉중이 어떠했을까. 대통령이 주춤하고 다시 문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고 적었다.
"빅4, 충성심 없는 사람은 제 살 길부터 찾더라"
그는 자신이 인사수석 시절 자신이 행한 인사중 가장 크게 후회하는 일로 '빅4' 인선을 꼽았다.
"정부기관으로서 막강한 힘을 가진 소위 '빅4'라는 것이 있었다. 검찰, 경찰, 국정원과 국세청이다. 권위주의 정부에서는 이 자리를 대통령의 측근으로 채워 정권을 지탱하는 축으로 활용해왔다. 이들 자리는 정권의 무기로 쓸 수 있는 자리다.
참여정부는 '빅4'에 대한 인사에서도 그런 통념을 깨뜨렸다. '4대 권부론'을 '국민 권부론'으로 바꾸었다. '정권을 쳐다보지 말고 국민을 보고 봉사하라'는 것이 대통령의 당부였다. 그래서 측근을 그 자리에 심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원칙에 따른 인사는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자신이 적임자이고 잘나서 뽑힌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국정을 끌고 가는 대통령의 의지가 먹히지 않고 머리와 손발이 따로 노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예컨대 시위문화에 대한 판단이 청와대와 검·경이 제각기여서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충성심이 있는 사람은 위기 상황이 오면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조직을 살려내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한다. 하지만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충성심이 없는 사람은 제 살 길부터 찾는다.
정무직의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충성심이다. 따라서 공모제는 추천기구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되, 대통령 고유의 인사권임을 감안하는 탄력적인 제도로 보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참여정권의 뼈저린 회한이 읽히는 회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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