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패러다임', 다시 부활하다!
<분석> 정부 '환율 개입', 외국인 자극하고 내수만 타격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이달 들어 한목소리로 쏟아내는 말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추석 직전인 지난 1일과 추석 직후인 5일 원-달러 환율 급락을 막기 위해 정부가 달러화를 사들였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지난 9월부터 이날까지 한 달 새 76원 이상 급락하며 5일 종가 기준 연중 최저점(1,173.70원)으로 떨어졌으니 그럴만도 하다.
정부의 '환율 개입' 재연, 외국계 '신경질'
그러나 1일에는 급락하던 원-달러 환율이 정부 개입 후 소폭 상승세로 마감했지만, 5일에는 정부 개입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다시 하락해 1170원대로 진입했다. 역외세력과 국내 금융계가 '원화 강세'에 배팅을 하며 달러화를 대거 팔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대목은 정부 개입 후 외국인의 한국주식 매도규모가 눈에 띄게 커졌다는 점이다. 외국인은 5일 지난 3월2일 이후 최대 규모인 3천628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외국인들이 순매도 행진을 한 것은 7거래일째이나, 매도규모가 정부의 환율시장 개입 후 크게 커졌다는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외국인들은 원화 강세가 계속돼야 '환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환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정부의 시장개입은 외국인보고 "한국주식 팔고 나가라"는 사인에 다름아니다.
물론,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원화 환율이 더 떨어지면 수출대기업의 채산성이 악화되니 정부개입은 외국인에게도 '반가운 일'이라는 정부 주장이 그런 대표적 예다. 그러나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얘기다. 그동안 "한국의 경제회복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무역흑자도 계속되고 있다"고 전 세계에 자랑해온 건 다름 아닌 정부다. 특히 미국에 비해 한국이 좋다고 자랑해왔다. 그렇다면 달러화에 대한 '원화 강세'는 당연하다. 환율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달러 약세는 대세
지금 달러는 누가 봐도 '약세'로 운명지어진 상태다. 미국정부의 자동차 구입지원이 8월에 끊기자 즉각 9월의 자동차 판매량이 급감하고 실업률이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오는 11월에 주택구입 지원이 끊기면 주택불황이 다시 심화되고, 특히 상업용 부동산은 주택부실을 능가하는 메가톤급 부실을 초래할 것이란 우려가 크다.
또한 한국 수출대기업들이 최근 원화 강세에 "죽겠다"고 아우성이나, 내막은 "아직도 견딜만하다"며 엄살로 치부하는 게 국내외의 일반적 평가다. 시장 일각에서는 "정부는 환율 1150원이 마지노선이라 하나 MB정부 초기처럼 1천원이나 950원이 돼도 견딜 수 있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한국기업들이 그만큼 튼실해졌다는 칭찬이기도 하다.
이런 마당에 한국정부가 '노골적인 환율 마지노선'을 시장에 알리면서 구두개입과 함께 실제개입에 나선 것은 '환차익' 가능성을 소멸시키면서 외국인들을 짜증 나게 했고, 그 결과 외국인의 한국주식 매도 규모가 커지면서 5일 코스피 1600마저 위협한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강만수 패러다임'의 부활
하지만 정부 환율개입의 보다 근원적 문제는 '강만수 패러다임'의 부활이라는 데 있다. 강만수 대통령경제특보는 지난해 기획재정부장관 시절 '환율주권론'을 앞세워 인위적으로 환율을 끌어올렸다가 물가폭등을 초래하면서 국민적 저항을 촉발시킨 바 있다.
그때 강만수 특보가 환율을 끌어올린 것이나 지금 더 이상의 환율 하락을 막기 위해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동일한 맥락, 즉 '강만수 패러다임'에 따른 것이다. '강만수 패러다임'이란 수출대기업을 위해 국민들이 물가부담을 떠맡으라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이는 지금 윤증현 경제팀이 '강만수 패러다임'에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보수신문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몇 달간 지지율 상승의 근원을 주식-부동산 등 '자산가격 급등'에서 찾고 있다. <동아일보>는 최근 부동산값과 이 대통령 지지율 상관관계를 강조했고, <조선일보>는 자산가격 상승에 따른 소비자심리와 이 대통령 지지율과 상관관계를 설명했다. 때문에 정부는 환율 하락을 계속 막으면서 국민들이 좀 손해를 보더라도 대기업들이 계속해 좋은 실적을 내고, 그 결과 이 대통령 지지율이 계속 고공행진을 하기를 희망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한 법. 한국 대기업들이 외국 대기업들보다 좋은 성적을 낸 결과, 원화가 강세가 되면 이를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수출 대기업들의 사정이 좀 나빠지면 스스로 살을 깎고 뼈를 깎는 노력에 박차를 가할 일이다. 그래야 수출기업도 경쟁력이 생기는 법이다.
더욱이 원화 강세가 되면 수출대기업이 고생하는 반면, 국민과 내수기업은 득을 보게 돼 있다. 인플레 압박이 완화되면서 그만큼 구매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특히 수출의존도가 기형적으로 높아진 한국경제는 내수기반 확충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다. 그동안 누구보다 큰 고생을 해온 국민-내수기업도 이제 경제회복의 혜택을 볼 때가 됐다는 의미다.
최근 가뜩이나 <월스트리트저널><파이낸셜타임스> 등 외국 경제전문매체들은 "한국의 거품"을 강하게 경계하고 비꼬고 있다. 이런 마당에 외국인이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시장 개입' 논란마저 불거진다면, 한국을 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다시 빠르게 싸늘해질 가능성이 높다.
요컨대 '강만수 패러다임'이 다시 전면에 나설 때가 절대로 아니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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