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붕괴' 가속화, '더블딥' 우려 확산
올 들어 14% 급락, 미국 소비-실업 악화로 '달러 외면' 심화
달러화 올 들어 14% 급락
8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미 달러화는 유로화에 대해 1.4514달러에 거래돼 전거래일보다 가치가 1.3% 떨어졌다. 달러화는 장중에 1.4535달러까지 거래되며 작년 12월18일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달러화는 일본 엔화에 대해서도 92.16엔에 거래돼 전거래일보다 가치가 1% 내렸다.
이에 따라 유로, 파운드, 엔, 스위스 프랑 등 6개 주요 통화에 대한 달러화 인덱스는 이날 1.2% 떨어진 77.047을 기록해 작년 9월29일 이후 최저로 떨어졌다. 달러화 인덱스는 올해 최고치였던 89.624에 비해 14%나 급락한 상태다.
달러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런던 자금시장에서도 빌리기에 가장 '값싼 통화'로 전락했다. 이날 3개월 달러 리보(런던 은행간 금리)는 역대 최저인 0.30%로 떨어졌다. 이는 0.37%인 3개월 엔 리보는 물론 0.31%인 프랑 리보보다 낮은 것이다. 3개월 달러 리보는 금융 위기가 한창이던 지난해 10월에는 4.81%도 넘는 기록적인 수준까지 치솟았었다.
금값 1000달러 돌파, 유가-원자재 동반급등
달러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안전대체 자산인 금을 비롯해 국제유가, 원자재값이 폭등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9월물 금은 이날 장중에 온스당 1009.70달러까지 폭등하며 지난해 3월18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가 999.80달러로 거래를 마감했다. 금 현물도 1007.45달러까지 오르며, 지난해 3월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10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 종가보다 3.08달러(4.5%) 폭등한 배럴당 71.10 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12월 인도분 구리 가격도 3.1% 오른 파운드당 2.956달러에 거래돼 작년 9월 26일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올랐다.
달러화 폭락, 미국 실물경제 침체 반영
한 나라의 화폐가치는 그 나라의 실물경제를 반영한다. 따라서 달러화 가치 하락은 미국 실물경제가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들보다 안 좋다는 의미이다.
미연준(FRB)은 9일 지난 7월 미국의 소비자신용 잔고가 전월보다 216억달러 줄어든 2조4천700억달러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같은 감소폭은 <로이터>가 애널리스트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던 예상 감소폭 40억달러를 크게 웃도는 규모로, 사상 최대 감소폭이다.
또한 지난 6월의 155억달러보다 더 확대된 수치로, 미국정부의 경기부양이 예산 소진으로 힘을 잃으면서 미국소비가 다시 급감하기 시작한 징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소비지출은 미국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어, 이같은 소비 감소 발표는 최근 9.7%로 급등한 실업률과 함께 미국경제가 다시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기 시작한 징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 달러화가 최근 급락행진을 거듭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럽, 중국 "달러기축통화 시대 끝나"
이처럼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자, '달러 기축통화'를 대체할 새로운 통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소리가 다시 유럽과 중국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유럽중앙은행(ECB) 멤버인 노보트니 오스트리아 중앙은행 총재는 9일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발표한 논문을 통해 "10년 후 유로화가 달러화를 제치고 세계기축통화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나 최소한 동등한 지위를 가질 가능성은 있다"며 "유로화는 세계의 금융안정에 공헌할 잠재력을 갖고 있는 만큼 유럽은 정치력을 발휘해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국제적으로 2종류 이상의 주요 국제통화가 동시에 존재하게 되면 정책협조와 주요통화간 환율 관리 등 새로운 과제가 생겨날 것"이라며 10년 내 달러기축통화 체제 붕괴를 기정사실화했다.
중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상 최초로 본토 밖에서 위안화 표시 국채를 발행했다. 사실상의 위안화 국제통화화에 적극 나선 것.
중국 재정부와 홍콩 특별행정구(SDR) 정부는 "오는 28일 중국 중앙정부가 홍콩에서 60억위안어치의 위한화 표시 국채를 발행키로 했다"고 8일 공동발표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9일 "달러화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는 시점에서 위안화를 국제화하려는 주요 조치"라고 분석했다.
달러 기축통화체제는 이미 구석부터 허물어지기 시작한 양상이다.
한국경제에 악재
달러 가치 급락과 이에 따른 국제원자재값 급등은 한국경제에 호재보다는 악재의 성격이 짙다.
지금 원-달러 환율은 보합세를 보이고 있으나 달러 가치가 계속 급락하면 향후 원화환율은 강세를 띨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환율효과가 사라지면서 수출에 타격이 가해지고 경상수지도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반면 원화 강세는 수입물가 하락 요인으로 작용하나, 달러 약세에 따른 국제원자재값 폭등이 거셀 경우 물가하락 요인을 잠식하면서 인플레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이럴 경우 저성장-고물가라는 최악의 '스태그플레이션' 위협이 현실화할 수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나라의 두 번째 수출국인 미국경제가 침체의 늪에 다시 빠져들 경우 세계경제가 동반 '더블딥' 위험에 빠져들면서 불황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밖에 중장기적으론 달러화 자산 위주로 비축해온 외환보유고 또한 큰 손실이 발생하는 '국부(國富) 증발' 사태도 우려된다. 달러 기축통화체제 붕괴는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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