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행정도시'에서 '대학도시'로?
과거 정운찬 "서울대 제2캠퍼스", 靑 일각 '대학도시' 구상
"정 내정자와 청와대 간에 교감이 없었다. 본인의 생각이다."(박선규 청와대 대변인)
정가를 발칵 뒤집은 정운찬 총리 내정자의 '세종시 축소' 파문에 대한 당사자와 청와대 해명이다. 한나라당도 "세종시법을 원안대로 처리할 것"이라며 파문 진화에 나섰다.
그렇다면 이번 파동은 과연 정 내정자 '개인 생각'에 불과한 것을 갖고 과잉반응하는 '정운찬발(發) 찻잔 속 태풍'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정 내정자는 자신의 발언이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에도 "후회는 없다"고 했다. 앞으로 총리가 되면 세종시를 원안이 아닌 다른 형태로 바꿀 생각이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청와대 내부 기류도 비슷하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몇 달 전 기자에게 "과연 다른 나라들이 모두 실패한 행정수도 이전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며 남아공 등 외국의 사례를 열거한 적이 있다. 서울시장 시절에 행정수도 이전에 강력 반대했다가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된 후에는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철회한 이명박 대통령의 속내도 비슷한 것으로 감지됐다.
당시는 워낙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지지율이 밑바닥이었기에 공론화하지 못했으나, 요즘 지지율이 반등하자 종전과 다른 움직임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청와대가 정 내정자 영입 과정에 이에 대한 정 내정자의 생각을 타진하기도 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세종시로 원안대로 9부2처2청을 옮기는 대신, 교육과학기술부 등 1~2개 부처만 옮기고 서울대 일부 단과대 등 국립대학과 과학연구단지 등을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영국 등에서 볼 수 있는 '대학도시'를 연상케 하는 구상이다.
이와 관련, 주목할 대목은 정운찬 내정자도 비슷한 구상을 밝힌 전례가 있다는 점이다. 정 내정자는 서울대 총장 시절이던 2002년 12월30일 "국가 정책상 행정수도가 이전된다면 국립대로서 행정수도에 제2캠퍼스를 설치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정 내정자는 그러나 총장 시절, 서울대를 통째로 옮기는 방안에 대해선 "실현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서울에서 자녀를 교육시키고자 하는 교수 등의 반발이 엄청날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정 내정자는 지난 3일 세종시 원안이 수정돼야 한다는 생각을 밝히며 "충청인들이 서운하지 않게 여러 가지 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서운해 하지 않을 대안'이란 그의 과거 발언과 최근 청와대 내부기류를 볼 때 '대학도시'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이회창 선진당 총재 등과 만나 "원안대로"를 약속한 바 있고, 이미 상당부분 공사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야당들과 현지의 거센 반발을 무마시키고 과연 쉽게 기존계획을 수정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와 관련,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 같은 경우는 '재정적자 폭증'을 이유로 4대강 사업과 세종시 등의 사업을 한꺼번에 축소하는 방안을 주장하고 있으나, 이 대통령이 4대강 사업만은 반드시 임기 내 완료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어 세종시 사업만 축소할 경우 형평성 논란이 일 전망이다.
'세종시 수정'이란 뜨거운 감자를 꺼내 든 정 내정자가 과연 이를 어떻게 요리해낼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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