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 괴담'에 시중은행들 몸서리
<동아><조선> 보도에 주가 급락, 모두 "리먼 인수 안해"
우리금융을 비롯해 하나금융, 신한금융, 국민은행 등은 일제히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리먼 지분 인수에 참여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대부분은 "검토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이들이 이처럼 일제히 보도 자료를 쏟아낸 것은 2일자 <동아일보>, 3일자 <조선일보>가 이들 금융기관들의 이름을 적시하며 이들이 산은과 공동으로 리먼 지분을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란 보도를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장의 반응이다. 한 예로 <동아일보> 보도후 우리은행 같은 곳은 주가가 이틀새 6%나 폭락하며 시가총액이 5천억원이나 허공으로 날라갔다. 정부보유지분 매각을 앞두고 한푼이라도 주가를 끌어올려야 할 우리은행 입장에서 보면 말 그대로 복장이 터지는 일이다.
뒤늦게 이름이 오른 다른 은행들도 피해를 보기는 마찬가지다. 신한 주가는 3일 코스피지수 급등에도 불구하고 1천250원(2.63%), 하나도 950원(2.57%) 떨어졌다.
시장이 이처럼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근본적으로 리먼 인수를 밑빠진 독에 물붓기로 보기 때문이다.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인수자금도 문제이나, 인수후에도 잘못하면 무한대로 돈을 쏟아부어야 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들은 그동안 일관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이름을 리먼 인수대상에 올린 <동아><조선> 등에 불만의 목소리를 털어놓으면서도 이들 기사가 생산된 진원지로 산업은행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기사 내용을 볼 때 산은쪽에서 흘린 혐의가 짙다는 이유에서다. 산은은 펄쩍 뛰며 자신들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다.
이에 일각에선 정부쪽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기도 하다. 정부가 리먼 출신의 민유성씨를 산업은행 행장에 6월 임명한 뒤 곧바로 리먼 인수가 추진된 것과, 7월에 임명된 박해춘 국민연금이사장이 월가 금융기관 인수에 의욕을 보인 것 등이 정부가 리먼 인수와 무관한 게 아니지 않냐는 것이다. 앞서 한국투자공사가 메릴린치에 20억달러를 투자한 전례도 있어, 최근 금융계에선 이와 관련한 각종 '음모론'이 나돌고 있기도 하다.
리먼 인수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시장의 반응이다. 그러나 최근 인수설에 휘말린 주가가 급락하는 상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리먼 인수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극히 부정적이다. 우선 리먼 인수에 들어갈 1차 25% 지분비용 50억~60억달러, 전체의 절반을 인수하는 데 들어갈 총 100억~120억달러의 비용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이다. 민유성 산은 행장은 산은에 돈을 안 빌려줄 데가 어디 있겠냐고 호언하고 있으나 최근 상황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2일 <로이터>에 따르면 산은의 5년만기 지급보증증권(CDS)의 스프래드(가산금리)는 183bp로, 전주의 162bp에서 21bp나 급등했다. 국제금융계에서도 산은의 리먼 인수에 부정적이며, 해외시장에서 돈을 빌리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빌리더라도 비싼 이자를 물고 빌려야 한다는 얘기다.
외환당국도 부정적이다. 외환당국 고위관계자는 "산은이 독자적으로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한다면 모르나 국내시장에서 조달하려 한다면 말도 안된다"며 수용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지금처럼 환율이 연일 폭등하는 상황에서 산은이 덜컥 리먼 인수 계약을 맺고 국내 시장의 달러를 갖고 리먼을 인수하려 한다면 그만큼 외환보유고가 줄어들면서 환율은 천정부지로 폭등할 것"이라며 "환율방어 측면에서도 용납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정부내에서도 산은의 리먼 인수를 놓고 상당한 시각차가 있음을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민유성 산은 행장이 진행중인 리먼 인수를 뭐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시중은행들이 펄쩍 뛰며 "같이 할 생각이 없다"고 하는 데도 리먼 인수를 강행한다면 의심은 정부쪽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이미 UBS 등 외국증권사는 정부지분이 있는 시중은행이 울며 겨자먹기로 끌려들어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하고 있다.
만에 하나,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안될 일이다. 한국은 여전히 '관치'가 지배하는 나라라는 인식에 국제사회에 각인되며, 한국금융 신인도는 그만큼 추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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