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째 금융공황, '정부 절대불신' 폭발
26조 감세, 재건축-재개발 활성화, 국민연금 투입에도 패닉
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8원 폭등한 1,134원으로 거래를 마감했다. 전날의 27원 폭등에 이어 이틀새 무려 45원이 폭등한 것이다. 2004년 10월이래 거의 4년만의 최고치다.
증시에서는 코스피지수가 오후 들어 1,400선이 붕괴되며 1,392까지 폭락했다가 폐장직전 기관-연기금의 무더기 매수로 간신히 전날보다 7.29포인트 떨어진 1,407원으로 거래를 마감했다. 그러나 기관들이 신경을 쓰지 않은 코스닥지수는 무려 21.07포인트, 4.8%나 폭락한 418.14로 거래를 마감했다.
이날 개인과 외국인은 각각 4천241억원, 2천638억원을 순매도했고, 기관은 7천165억원을 순매수했다. 시장이 완전 패닉상태에 빠져든 것이다.
2일의 환율 상승, 주가 하락 폭은 전날의 그것보다는 상대적으로 소폭이었지만 내용은 훨씬 '악성'이다. 이는 정부가 시장의 패닉 심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1일 오후부터 2일까지 온갖 대책과 발언을 쏟아냈음에도 패닉이 계속 진행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1일 26조원의 세금감면 대책을 발표했다. 법인세, 상속세, 양도세, 소득세 등 전방위 세금감면 경기부양책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2일 재개발-재건축 규제완화 특명을 내렸다. 부동산경기 부양책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은 필요하다면 또다시 외환시장에 개입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는 국민연금에 대해 주식 매입을 압박했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제2 외환위기설'을 일축했다.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수단을 총동원한 셈이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차갑다 못해 얼음장 같았다. '절대 불신'의 표출이다. 시장이 완전히 등을 돌린 양상이다.
개장초만 해도 찔끔 내리는가 싶던 원-달러 환율은 다시 급등했다. '역외세력' 때문이다. 역외세력이 달러 사자 주문을 내자 환율은 폭등했다. 역외세력은 헤지펀드 등 핫머니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외환시장을 두들겨 본 셈이다.
1997년에도 멀찌감치 싱가포르 등에 포진한 역외세력들이 한국을 두들겨보다가 재경원이 흐름을 못 읽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뒤 총공세를 펴 한국 외환시장을 통째로 뒤흔든 바 있다. 역외세력의 준동은 그만큼 간단치 않은 메시지다. 스테이트 스트리트의 에번스가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현재로선 (투자자) 어느 누구도 한국을 사랑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 말을 되새겨봐야 할 때인 것이다.
이처럼 외국인들의 시선이 싸늘함에도 강만수 장관 등 재정부 고위인사들은 계속해 "우리 총알 많다. 언제든 시장에 들어갈 것"이란 동문서답으로 대응했다. 외국인들이 한국을 불신하는 이유가 강만수 경제팀의 설익은 시장개입이란 사실을 도통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정책을 불신하기란 국내시장도 마찬가지다. 개미들은 이틀째 투매를 계속했다. 더이상 정부도 기업도 못믿겠다는 의미다.
이날도 기업 중에서 희생물이 나왔다. 동부그룹이다. 동부생명 유상증자설에 동부그룹 전체주가가 폭락했다. 시장에선 벌써 "내일은 누구냐"는 얘기가 나돈다. 기업들에 대한 신뢰가 깨진 것이다.
정부가 1~2일 각종 건설경기 부양책을 쏟아냈지만 건설주도 폭락했다. 몇몇 굴지의 건설사를 제외한 대다수 건설주가 마찬가지였다. 쌍용건설, 코오롱건설, 서광건설, 한신공영, 동부건설은 하한가까지 폭락했고 대다수 건설사도 마찬가지였다. 정부가 버블세븐 경기 부양을 위해 양도소득세를 사실상 무력화하고 재개발-재건축 활성화를 지시했으나, "빅5만 득을 보지 대다수 건설사는 열외"라는 인식이 건설주 폭락을 불렀다.
시장을 흔히 송사리떼에 비유한다. 자그마한 돌맹이 하나에도 쏜살같이 흩어지는 게 시장이다. 그만큼 정부정책은 진중하고 신중해야 한다. 시장을 불안케 해선 안된다. 당장 지금 어려운 게 문제가 안된다. 시장이 원하는 것은 비전이다, 지도력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 시장의 패닉은 지도력의 패닉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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