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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김대중 선생, 애들에겐 협동부터 가르쳐야죠"

독일의 임혜지 박사, 김대중 칼럼에 반박글

독일 뮌헨에서 활동중인 교포 건축인 임혜지 박사가 26일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이 쓴 교육 관련 칼럼에 대해 전면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김대중 고문이 지난 24일자 칼럼 '금메달과 평준화'를 통해 베이징올림픽을 예로 들며 "경쟁에는 여러 부작용이 있다. 그러나 부작용은 그것대로 극복해야지 교각살우(矯角殺牛)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올림픽에도 3·4위전이 있고 패자부활전도 있다. 금메달이 안 되면 3·4위전으로 가야 하고 패자부활전에도 나설 수 있다. 거기에도 경쟁은 있다. 앞서 가는 사람, 뒤처지는 사람이 각각 분수에 맞게 윈-윈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옳지, 앞선 사람을 끌어내려 뒤처진 사람에 맞추는 것은 양쪽 다 죽이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며 평준화 정책 폐지를 주장한 데 대해 반론인 셈.

임혜지 박사는 자신의 블로그(www.hanamana.de/hana)에 올린 '학생들의 경쟁과 국가의 경쟁력'이란 제목의 글을 통해 세계 최강의 국가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독일 교육의 현실을 소개하며 "독일 대학들이 평준화인 까닭에 어떤 대학도 세계적인 명문대학의 랭킹에 들지 못하지만 독일인들은 개의치 않는다"며 "한두 개 대학의 실력이 국력은 아니기 때문이죠. 독일의 대학에서 여태까지 훌륭한 인재를 충분히 배출해냈다는 것을 과학기술 강국이란 명칭이 증명한다"고 주장했다. 임박사는 "독일 등 유럽공동체에 대항하여 우리 학생들은 앞으로 먹이싸움을 벌이게 된다"며 "이들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선 우리 학생들도 협동하는 기술부터 먼저 배워야 하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

임 박사는 한국에서 태어나 10대때 가족과 함께 독일로 이주, 칼스루에공과대학 건축과를 졸업하고 건축사로 공학박사학위를 받은 뒤, 현재 뮌헨에서 살고 있는 임씨는 프리랜서로 독일 문화재청에서 문화재 실측조사와 발굴연구를 하고 있다. 2003년에는 <프리드리히 바이브렌너 시대의 칼스루에 주택>을 독일 유명출판사에서 펴냈고, 그동안 이명박 대통령의 한반도대운하의 벤치마킹 대상인 독일 대운하의 허구성을 지적한 글들을 엮어 올해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한겨레출판)을 펴내기도 했다.

다음은 최근 교육계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평준화' 폐지를 둘러싼 양측의 시각을 읽을 수 있는 임혜지씨 글과, 김대중 <조선일보> 글 전문.

학생들의 경쟁과 국가의 경쟁력

조선일보의 김대중 선생님께!

안녕하십니까? 저는 독일에서 막 대학에 들어가려는 아들과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을 키우고 있는 중년 여성입니다. 8월 24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선생님의 칼럼 '금메달과 평준화'를 읽고 우려되는 점이 있어 적습니다. 선생님의 견해와는 달리 저는 우리나라의 어린 학생들이 심한 경쟁에 노출되어 있고, 이런 현상은 장기적으로 국가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독일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독일에선 교육개혁이 몇 가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유럽공동체 안에서 우수한 두뇌의 유동성을 도모하기 위해 유럽의 학제를 통일하는 사업(볼로냐 회의 1999년)의 일환입니다. 디플롬이었던 대학과정이 베츨러와 마스터로 나뉘어 정비되는 작업이 지금 활발하게 진행중입니다. 또한 독일의 초중고교 학과과정이 13년제에서 12년제로 바뀌고 있습니다. 세계화의 시대를 맞아 독일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한 살이라도 젊은 고급인력을 하루라도 빨리 배출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마지막 하나는 아직 의견을 나누는 단계에 있는데, 이것 역시 세계화의 시대를 맞아 독일의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취지지만 접근하는 시각이 좀 다릅니다. 이 글의 주제이므로 상세히 설명하겠습니다.

독일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그렇다할 천연자본이 없이 전적으로 인적자본에 기대어 과학기술의 힘으로 먹고 사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작금의 상태로는 우수한 인적자본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힘들겠다는 조사결과가 나와서 온 나라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저조한 출산율에 따르는 인구의 감소와 불합리한 교육제도로 인한 인재의 낭비가 그 원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현재 독일에서 일어나는 인재의 낭비는 두 가지 현상에 기인합니다. (사실은 하나 더 있는데 주제에서 벗어나기에 생략합니다.)

기회의 불평등

첫째는 재능이 꽃필 기회를 얻지 못하고 미리 탈락되는 '기회의 불평등' 현상입니다. 독일에선 초등학교 4학년 성적에 의해서 대학교육을 받을 학생과 직업교육을 받을 학생들의 진로가 결정되지요. 아이들의 성장 속도가 얼마나 제각각이라는 것을, 열 살짜리 아이가 주변 환경의 영향을 얼마나 많이 받는지를,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면 알 겁니다. 약 30%의 어린이들이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는 김나지움에 선발되는데, 이때 부모들의 능력과 관심이 크게 작용합니다. 무상교육에 공교육 위주의 나라인지라 따로 사교육비가 드는 건 아니지만, 돈 버느라고 바쁘거나 학력이 낮은 부모들은 늦된 자녀들을 독려하여 상위 30%에 들 수 있도록 도와줄 여력이 없습니다.

부모의 생활수준과 교육수준에 따라 자녀들의 진로가 일찌감치 결정되는 현상은 통계에서 나타납니다. 부모가 대졸학력인 가정에선 83%의 자녀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그 이하의 학력을 가진 부모 밑에서 자라는 자녀들은 23%만이 대학에 진학합니다. 여기에 부모의 경제력까지 합치면, 대졸출신 공무원의 자녀들은 학력이 낮은 노동자의 자녀들보다 5.5 배나 높은 대학 진학률을 보입니다.

가난과 무지를 대물림하는 '기회의 불평등'은 하류층 자녀들이 고급인력으로 클 수 있는 기회를 막아 막대한 국가적 낭비를 초래합니다. 이것은 인권운동가들의 주장이 아니라 경제, 교육, 행정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돈 한 푼 안 들이고도 공부시킬 수 있는 독일에서도 이럴진 데, 선행학습과 사교육에 막대한 사유재산을 쏟아 부어야 하는 우리나라에서 '기회의 불평등'은 얼마나 크며 또한 그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은 얼마나 클는지요? '능력의 평등'과 '기회의 평등'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똑같은 대가를 받는다면 일에 대한 의욕을 잃겠지만,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는 사회에선 구성원 모두가 열심히 노력하게 됩니다. 자칫 남의 도움으로 연명했을 사람도 남을 도와주는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지금 독일사회는 그 잠재력에 눈독을 들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의견을 모으는 논쟁의 단계에 있습니다. 현재의 교육제도를 독일의 성공과 결부시켜 고수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지요. 어려서부터 산업계 일꾼과 학문계 일꾼을 나누어 양성하는 기존의 학제는 패전 독일의 산업이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효용성이 컸습니다. 그때도 학력의 대물림은 있었지만 경제성장기에는 이것이 가난의 대물림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속성장의 시대도 지나갔고 세계화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독일 산업의 양상도 바뀌었고, 사회가 양극화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교육제도를 시대에 맞게 개선하지 않으면 양극화현상은 심화되고 국가 경쟁력도 약화될 것이라 전망합니다.

학부모로서 이 사회에 깊숙이 관여하며 관찰하는 저의 판단으로 보건대, 이제 독일에서 '기회의 평등'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개혁이 실행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기회의 평등'이 국가의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것은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떠나서 독일의 미래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다 공감하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하향성 평준화

두 번째 인재의 낭비는 김대중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하향성 평준화' 현상에 기인합니다. 독일에선 초중고교와 대학이 공립이고 평준화인 까닭에 수재들을 따로 모아 가르치는 영재교육이 대단히 미진하거든요. 독일 내에서도 불만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영재학급을 운영하는 학교도 있고, 실력이 특출한 고등학생이 대학 과목을 미리 수강할 수 있는 제도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 독일 대학의 평준화를 풀자는 의견은 나오지 않습니다. 독일 대학들이 평준화인 까닭에 어떤 대학도 세계적인 명문대학의 랭킹에 들지 못하지만 독일인들은 개의치 않습니다. 한두 개 대학의 실력이 국력은 아니기 때문이죠. 독일의 대학에서 여태까지 훌륭한 인재를 충분히 배출해냈다는 것을 과학기술 강국이란 명칭이 증명합니다.

경험으로 볼 때, 독일에서 대학 공부의 특성은 자율성과 창조성입니다. 옆 사람과의 경쟁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싸우는 시스템이랄까요? 자율성과 창조성을 바탕으로 깊이 있는 공부와 연구를 하는 일은, 층층시하의 경쟁시스템에서 옆 사람 눈치를 보면서는 절대로 이룰 수 없는 일이죠. 볼로냐 회의에 따라 요즘 새로 도입된 베츨러와 마스터 학제는 실용성이 있긴 하지만 이런 진득한 공부가 불가능하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학교마다 랭킹을 매겨 수재들을 따로따로 경쟁시킴으로써 국가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미국을 모델로 삼자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그러나 미국은 필요한 고급인력을 외국에서 조달하는 이민국입니다. 자국민의 공교육이 시원찮아서 고급인력을 스스로 배출하지 못해도 괜찮은, 그래도 국가 경쟁력에 지장이 없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독일이나 한국에서 개방정책으로 노선을 바꾼다 해도, 아무리 그린카드를 남발해도, 미국에 가려고 하는 해외의 고급두뇌들을 끌어들일 수 없습니다. 끌어들이기는커녕 상위권 국내 인력을 미국에 빼앗기지만 않아도 다행일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걱정하시는 '하향성 평준화' 현상을 독일 고등학교에서 극복하는 모습을 제가 바로 옆에서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제 아들이 들어간 수학 전공반에서 학생들의 실력이 최상과 최하로 딱 나뉘는 드문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성적 분포도를 보면 마치 장구처럼 최고점수와 낙제점수가 양쪽으로 몰려있는 형국이었지요. 이럴 때는 선생님의 신념에 따라 우등생들이 희생되기도 하고 열등생들이 희생되기도 합니다. 선생님은 열등생들을 위하여 반복과 복습에 기반하는 수업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전공반에 들어와 앞서가는 수업을 기대했던 우등생들은 이러다가 진도가 늦어져서 아비투어 시험(우리나라 수능에 해당)에 지장이 있을까봐 불안했습니다. 자식들의 진로가 달린 중요한 문제라 학부모회의가 열렸습니다. 우연스럽게도 우등생들의 부모만 참석한 그 회의에선 그간 쌓였던 불만인 하향성 평준화에 대한 성토가 터져 나왔습니다. 잠시 후, 대학에서 수학 선생이 될 대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는 한 아버지가 입을 열었습니다. 내 아이를 위해선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열등생들을 버리고 가지 않는 선생님의 신념을 존중한다며, 만약 진도가 늦어질 기미가 보이면 자기가 따로 가르쳐서 우등생들이 좋은 점수를 받는 일에 차질이 없도록 돕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아버지가 가르칠 필요도 없게 일이 돌아갔습니다. 아이들은 자기네들끼리 먼저 시도해보다가 안되면 도움을 청하겠다며 함께 모여서 공부하면서 스스로 해결했습니다.

졸업식날 부모들은 그 말썽 많았던 수학 전공반의 평균점수가 2점(미국의 B에 해당)이란 소리를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낙제점수로 시작한 열등생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상위권의 성적을 낸 것이죠. 또 이 사건에서 자칫 피해자가 됐을 수도 있는 우등생들은 협동작업을 통해 스스로의 힘으로 창조적인 공부를 경험했습니다. 그 자신감과 자부심을 무엇으로 살 수 있을까요? 그런데 만약에 학생들에게 등수를 매겨 친구들끼리 경쟁시키는 시스템에서라면 이런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공부가 가능했을까요? 저는 여기서 독일의 국력을 보았습니다. 선생님과 학생, 학부모가 손을 잡고 이룬 합작품입니다.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치맛바람만 거센 게 아닙니다. 자식 사랑은 어느 나라나 똑같지요. 단지 시스템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뿐입니다. 부모들이 각자 자기 아이를 위해 바치는 정성이 연대의식으로 모아질 수 있는 나라에선 정치적 견제세력으로 부상합니다.

예를 들면, 독일 학교의 교육기간이 13년에서 12년으로 줄었는데 교과내용은 바뀌지 않아 학생들의 수업시간표가 길어졌습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 집에 와서 숙제하는 시간, 자유시간을 꼼꼼히 적어서 어린이의 건강과 인권과 창조적인 교육이 보장되고 있는지 검토합니다. 교과과정 중에서 구시대의 유물로서 아이들에게 쓸데없는 부담만 준다고 여겨지는 내용은 과감히 삭제할 것을 요구합니다. 선진국의 일꾼에게 필요한 실력은 남보다 빨리 땅을 파는 부지런한 삽질이 아니라 빛으로 가는 자동차를 상상할 수 있는 풍부한 상상력과 창조력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학제에 해당되지 않는 고학년 학생들의 부모들도 적극적으로 힘을 보탭니다. 내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부모들의 의식구조가 잘못되어서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치맛바람이 부는 게 아닙니다. 따로따로 경쟁하는 사회구조 속에선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밖에는 자식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그런 겁니다.

제가 남의 나라 소식에 불과한 글을 굳이 드리는 이유는 이런 남의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의 경쟁국이라는 사실입니다. 유럽공동체는 또 어떻습니까? 독일과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나라들이 서로 경쟁하는 대신 더욱 효율적으로 뭉치려고 교육까지 개편해가며 힘을 기르고 있잖아요? 이런 유럽공동체에 대항하여 우리 학생들은 앞으로 먹이싸움을 벌이게 됩니다.

이들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선 우리 학생들도 협동하는 기술부터 먼저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상생관계에 있는 친구들을 경쟁상대로 보게 만드는 교육제도는 얼마나 비현실적인가요? 나의 안위를 위해서 절대로 쓰러져서는 안 되는 옆의 동지를, 내가 밟고 지나가야 하는 적으로 오해하게 만드는 교육제도를 가지고 앞으로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이 있겠습니까? 사람을 쓸데없이 초조하게 만들어 창조적인 사고를 배워야 할 귀중한 시점을 놓치게 만드는 등수와 경쟁은 과연 누구에게 이익이 될까요? '분할하라. 그리고 지배하라. (divide et impera)' 이것은 기원전부터 서구사회에 전래하는, 널리 알려진 병법입니다. 적을 따로따로 경쟁시켜 자기네들끼리 힘을 빼게 만든 후에 효율적으로 잡아먹으란 뜻이지요. 그런데 우리끼리 자진해서 경쟁이라뇨?

다른 의견을 말씀드리는 제 글이 선생님께 결례가 아니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선생님과 논쟁하기 위함이 아니라, 여러 경험에서 나오는 다양한 의견을 종합함으로써 우리나라 학생들을 진정한 경쟁력으로 이끄는 길을 찾는 일에 우리 함께 힘을 합쳐 숙고해보자는 부탁을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8.8.26
독일 뮌헨에서 임혜지 드림


김대중 칼럼 '금메달과 평준화'

이번 베이징올림픽을 통해 새삼 확인한 것이 있다. 그것은 한국인들이 금메달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금메달을 좋아하지 않는 나라나 국민이 없겠지만 유독 우리는 금메달에 올인하며 금메달만이 메달인양 대접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 스포츠 관계자는 텔레비전에 나와 '은메달을 딴 선수가 마치 죄인인 양 고개 숙이며 눈물을 글썽이는 나라는 아마도 우리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올림픽의 정신은 참여에 있다고들 하고 패자(敗者)도 아름답다고 하지만 그것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은 없다.

금메달은 일등을 말한다. 올림픽의 금메달은 세계최고를 의미한다. '세계최고'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금메달의 뒤에는 그 선수의 땀과 눈물, 역경을 이겨내는 인내, 그리고 관계자들의 헌신과 노력이 있다. 무엇보다 같은 종목에 참가하는 수십, 수백명과의 경쟁에서 이겨낸다는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삶의 상당부분을 투자한 긴 여정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그들은 어떤 교육을 받고 있으며 어떤 인생훈련을 치르고 있으며 어떤 사회적 제도적 틀에 묶여 있는가? 우리의 어린 세대, 젊은 세대는 평준화에 길들여지고 있다. 그들의 교육을 가로지르는 중심축은 평준화이고 그들을 지배하는 교육적 덕목은 평등이다. 경쟁은 못하는 사람을 밟고 넘어서는 '나쁜 것'이고, 돈 있는 계층에게만 유리할 수 있는, 반(反)인간적 장치라는 것이 평준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다.

인생이, 인간의 삶이 언제까지나 평등하게 가고 너·나의 차별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좋다. 경쟁은 힘들고 평준화는 편하다. 경쟁은 때로 각박하고 남을 밟고 넘어서는 작업이다. 비인간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경쟁 없이 살 수 있는 평등한 세상은 그야말로 낙원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다. 평준화에 익숙해진 우리의 청소년들은 곧 경쟁이 판치는 엄혹한 세상에 내동댕이처지게 된다. 경쟁이 아닌 배정(配定)에 길들여진 학생들은 학교를 나오자마자 금메달만을 숭상하는 세상의 인심에 직면하게 된다. 경쟁을 나쁜 것으로 여기는 전교조 선생에게서 교육을 받은 우리의 차세대들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평준화가 통하지 않는 살벌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때로는 '너 죽고 나 사는' 투쟁에 아무런 훈련이나 준비 없이 나서야 하는 것이다. 경쟁도 훈련해야 한다. 경쟁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은 우리의 젊은이들을 비무장인 채 세상에 내보내는 것이다.

이것은 죄악이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그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식을 가르쳐야 한다. 경쟁 없는 세상을 끝까지 보장할 수 없다면 아이들을 덮어놓고 무장 해제해서는 안 된다. 끝까지 평준화를 신봉할 것이면 금메달에 목숨 걸듯이 매달리는 세상을 만들지 말았어야 한다. 왜냐하면 메달은 바로 경쟁이고 금메달은 최고의 경쟁이기 때문이다. 평준화로는 금메달을 딸 수 없다.

전쟁의 폐허 위에 오늘의 경제를 만들어낸 전후(戰後)세대들은 오로지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만 배웠다. 형제끼리도 경쟁했고 친한 친구끼리도 경쟁했다. 때로는 치열하고 때로는 비열하기까지 했던 경쟁 속의 삶이었다. 오늘의 세계는 여전히 경쟁체제로 가고 있다. 경쟁을 부도덕한 것으로 치부하고 평준·평등을 지고의 가치로 여기는 전교조식(式) 교육으로는 세계에서 살아 남을 수 없다.

문제는 우리의 의식구조에 있다. 지금 우리는 모순되는 의식의 단면들을 여기저기서 목도한다. 교육제도는 평준화에 머물면서 경쟁의 최고치인 금메달에 환호하는 이중구조가 대표적이다. 입으로는 반미(反美)를 부르짖으면서 자녀들은 미국에 못 보내 안달인 경우를 우리는 자주 본다. 자유와 인권을 얘기하면서 북한 주민의 인권에는 눈을 돌리는 이율배반의 현상이 버젓이 존재한다. 명색이 법치국가라면서 준법정신은 땅에 떨어진 세태가 판을 친다. 너무나 위선적이다.

경쟁이 사람을 잘못 인도하는 경우가 없을 수 없다. 경쟁에는 여러 부작용이 있다. 그러나 부작용은 그것대로 극복해야지 교각살우(矯角殺牛)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올림픽에도 3·4위전이 있고 패자부활전도 있다. 금메달이 안 되면 3·4위전으로 가야 하고 패자부활전에도 나설 수 있다. 거기에도 경쟁은 있다. 앞서 가는 사람, 뒤처지는 사람이 각각 분수에 맞게 윈-윈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옳지, 앞선 사람을 끌어내려 뒤처진 사람에 맞추는 것은 양쪽 다 죽이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입력 : 2008.08.24 19:54 / 수정 : 2008.08.24 19:54
임지욱 기자

댓글이 3 개 있습니다.

  • 15 30
    곰돌이푸

    맞네요..자유당..
    하기야 조선애들 뇌수준이 자유당때수준하고 비슷하지요...^^

  • 29 12
    김대중

    김대중씨, 제발 이젠 붓을 놓으십시오!!!
    김 대 중씨, 당신의 거짓과 위선의 말장난을 언제까지 독자들은 들어야 하는가?
    당신은 당신의 논리만 &#50737;다고 생각하는 우물안 개구리식은 아닌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편벽성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생각과 글은 논리가 있어야 하나, 당신이 한사코 고집하는 이 해괴한 논리는 어디서 나오는가? 피해망상증에 가까운 한풀이식 독설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가? 폭력적인 글쓰기, 세월이 가도 진화하지 않은 당신의 심장에 남은 무서운 증오심, 나이가 들면 바뀐다고 하는데..... 언제까지 당신의 필력은 미친 지귀의 불길처럼 세상을 불태울 것인가!
    이젠 제발 붓을 놓기 바란다. 글쓰는 사람으로서 몇 십 년 똥필을 들었으면 이젠 그만 붓을 놓을 때도 되지 않았는가? 더러운 냄새가 역겹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당신이 독차지한 귀한 지상의 지면을 이젠 균형 잡힌 논리를 갖춘 분에게 물려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듯 영혼을 정화해주는 아침을 독자들은 맞고 싶은 것입니다.
    글의 흐름도 없고, 증오와 독선만 난무하는 당신의 글, 제발 이젠 붓을 놓으십시오. 측은합니다. 항상 당신의 글은 삼천포로 떨어지는 오리알 같아요. 그것을 글이라고 아는 사람, 그토록 글을 쓰고 싶어 미칠 것 같으면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하급반 교과서라도 사서 글공부를 야무지게 하지지요.
    글 쓰는 사람으로 남으려면 누구에게나 감동을 주는 명문 한 편은 써 놓고 가야하는 것 아니겠어요. 당신이 예찬하는 경쟁을 당신은 어려서 잘못하였는가 봐요. 남 쓰러뜨리고 짓밟고 혼자만 잘 먹고 잘 사는 훈련만 한 것 같아요. 깊이 있는 생각이라고는 못하고 살아온 사람 같아요. 가슴에 미움과 증오의 독버섯만 키워온 동굴처럼 어두운 습한 그늘이 있는 것 같아요.
    당신의 어두운 영혼의 세계에 빛이 들고 바람이 통하기를 소망합니다.

  • 32 21
    고엽제알바

    죄선 애들에게 충고까지 ㅋㅋㅋ
    죄선 애들의 머리 구조는 자유당이라 ㅋㅋㅋ
    아무것도 몰라요 ㅋㅋㅋ
    지금도 19세기 말로 생각할 정도인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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