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안철수 모두 떨게하는 '호남 민심'
"안방에서만 다퉈서 뭐 하냐", "치열한 야성 되찾아라"
박지원 민주당 의원의 표현에 따르면, 호남 민심이란 '호남 거주민 500만+수도권 거주 호남출신 1천만' 등 1천500만명의 정치의식을 가리킨다. 전체 인구 5천만명의 30%를 차지하는 숫자다. "호남에 안주해선 안되지만 호남없이는 야당이 살 수 없다"고 박 의원이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호남 민심'은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대선패배후 호남 민심은 민주당에게 차갑게 등 돌리고 안철수신당쪽으로 확 쏠렸다. 한때 호남에서 안철수신당 지지율은 민주당 지지율의 3배에 달했다.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은 그 원인을 "다 잡은 정권을 놓쳐버린 허탈감, 미움이 있다. 그리고 책임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죄송합니다’ 가 아니라 ‘아이고, 우리가 48프로나 얻었다’ 하니까 속이 뒤집어지지. '내 책임이요' 하고 나온 사람은 한 명도 없지 않았나. 그래서 ‘에이, 나쁜 사람들’, 이런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러던 것이 최근 들어서는 그렇게 높던 안철수신당 지지율이 뚝 꺾이면서 상대적으로 민주당 지지율이 높아져 양쪽이 엇비슷해졌다. 민주당은 "호남이 우리의 진정성을 알아주기 시작했다"고 고문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착각이다. 안철수신당 지지율 하락에 따른 반사이익이지, 민주당이 잘해서 올라간 게 아니기 때문이다.
광주지역 언론들의 지적을 보면 지금 호남은 하나의 분명한 잣대를 갖고 차갑게 민주당과 안철수신당을 지켜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남일보>의 이용환 논설위원은 지난 1월9일 칼럼을 통해 민주당을 무섭게 생체해부했다.
이 위원은 "지금, 민주당은 초라하다 못해 비참할 만큼 몰락하고 있다. 지난 1일 SBS가 발표한 민주당 지지율은 8.9%, 서울신문의 조사에서도 9.4%에 머물렀다. 마지노선이라는 10%마저 무너진 것"이라며 "'어르신들 말고는 모두 민주당에 등을 돌렸다'는 민주당 관계자의 한숨이 실감날 정도"라고 개탄했다.
그는 "무엇이 60년의 전통을 지켜온 의석 수 127석의 제1야당 민주당을 이렇게 추락시켰을까"라고 물음을 던진 뒤, "그 해답의 일부는 지난 달 31일 서울역 앞 고가도로 위에서 분신한 이남종 씨 사건의 처리 과정에서 찾을 수 있을는지 모른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이 씨가 사망한 뒤 3일 열린 최고위원 회의에서 '특검을 요구하며 분신을 감행한 고 이남종 씨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정치권은 깊이 돌이켜봐야 한다'며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없도록 지난 대선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그 뿐, 민주당은 분신 정국에 철저히 무관심했다. 김 대표마저 조문은커녕 4일 열린 영결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그는 이어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에 대한 특검을 관철시키겠다던 국민과의 약속도 슬그머니 내려놨다. 민영화를 놓고 벌이던 철도노조의 파업이나 역사 왜곡, 불통 인사, 형평성 잃은 예산 등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언제나 제3자일 뿐이었다. 친노, 비노, 주류, 비주류라고 쓰인 명찰들을 다 던져 버리고, 오직 민주당이라고 쓰인 이름표만 달고 혁신에 매진하겠다고 했지만 당내 갈등은 여전하다. '2등에 안주한다'는 혹평도 나온다"며 "서민들의 목소리를 귀 담아 듣고 국민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그들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치열한 야성(野性)을 되찾아야 한다. 그것이 민주당이 사는 길"이라고 '야성 회복'을 촉구했다.
안철수신당도 도마위에 올라가긴 마찬가지다.
<광주일보>는 안철수 신당 창당 선언 다음날인 지난달 23일 사설을 통해 "안철수 신당에 대한 호남의 지지 이유는 무엇보다 안 의원이 호남의 정치적 희망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데 있다. 이는 민주당이 이렇다할 희망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안 의원이 호남에만 의존도를 넓히고, 야권 연대가 성사되지 못한다면 양당은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광주일보>는 "호남에서야 어떻게 싸우든 문제될 게 없지만 적어도 민주당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되는 서울시장과 인천시장, 충남·북, 강원 도지사 선거에 신당이 그럴듯한 인물로 맞불을 놓아 새누리당 후보가 어부지리를 얻는다면 공멸은 불을 보듯 뻔하다"며 "따라서 야권연대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야권연대를 주문했다.
<광주일보>는 "또한 신당이 야권의 퇴물 정치인 내지 일부 현역의원들을 빼 내가는 식이라면 그가 주창하는 새정치와도 거리가 멀다"며 "참신한 신진인사들을 대거 등용하고, 수도권과 충청권, 영남 등지로 외연을 확대해 지지기반을 높여야 한다. 그게 호남사람들의 바람이자 지지에 대한 응답"이라며 이삭줍기 중단을 촉구했다.
<광주일보>는 "안 신당은 이번 지방선거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라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선거 결과를 지켜본 후 ‘열린 자세’로 야권 재편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거듭 야권연대의 중차대성을 강조한 뒤, "안 의원은 그동안 한국 정치사에서 숱하게 사라졌던 제3당의 운명을 겸허히 새겨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근혜 정부 심판이라는 대의가 최우선시돼야지, 땅 따먹기식 접근을 하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 메시지였다.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 지지율이 엇비슷해진 설연휴 직후인 지난 3일 <전남일보>는 사설을 통해 양 세력에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사설은 "이번 설 연휴에 가장 바쁜 사람들은 정치인들이었다. 호남 지방이 6ㆍ4 지방선거에서 최대 격전지가 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민주당과 새정치신당(안철수 신당) 관계자들은 지역 곳곳을 누비며 민심을 청취했다"며 "그러나 이들에게 돌아오는 목소리는 '안방에서만 다퉈 뭐하느냐'는 쓴소리가 주류를 이뤘다"고 호남 민심을 전했다.
사설은 우선 민주당에 대해선 "이번 설 연휴에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부인인 탤런트 최명길 씨와 함께 광주ㆍ여수ㆍ광양 등에서 상주하면서 호남 민심 잡기에 안간힘을 썼다"며 "그러나 김 대표는 대안 제시보다는 여전히 감성에 호소했다. 호남 사람들이 민주당에 실망한 것은 총선과 대선에서 새누리당에 잇따라 패하고도 반성할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것을 파악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답답하다"고 탄식했다.
사설은 안철수신당에 대해서도 "호남 사람들의 민주당에 대한 실망감은 안철수 신당에 대한 반사 이익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안 신당의 새 정치가 여전히 모호하고 호남에만 집중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갈수록 지지도가 떨어지는 여론조사 결과가 그것을 말해준다"며 "안 신당이 기존 정치권과는 다른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 주면서 민주당의 대안 세력이 되지 못한다면 더 추락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사설은 결론적으로 "호남 사람들은 민주당과 안 신당이 안방이나 다름없는 호남에서만 다툼을 벌이고 있는데 대해 크게 실망하고 있다"며 "민주당이나 안 신당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지방선거에서 공천 혁명을 하지 않으면 호남에서 설 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설 민심은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며 양당에 경고했다.
지금 호남 민심이 원하는 야당은 '치열한 야성의 야당', '집권세력의 독주를 견제하는 야당'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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