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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세계 청소년 축구 한국4강, 영화로 만들어야

한국영화
조회: 319

83세계 청소년 축구 한국4강, 영화로 만들어야

지금 제23회 2023 FIFA U-20 월드컵 대회가 아르헨티나에서 펼쳐
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1983년 멕시코 대회에 출전해서 4강 신화를 이룩한 적이 있
습니다 그당시 4강 신화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40년전에 이룩한 엄청난 신화적인 경기였습니다

당시 열악한 한국의 축구현실에서 승부사 박종환 감독의 지도아래 선
수들의 피나는 노력과 훈련과정을 담고

또한 멕시코 현장에서 이룩한 감동과 감격의 순간들을 영화로 만들면
한국뿐만이 아니고 전세계인들에게 많은 주목을 받고 관심받는 영화
가 될것 같습니다

1983년 당시 그러니까 1970년대 1980년 초반까지, 한국의 축구현실
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당시 현실을 상징적으로 1가지만 예를들면 전국에 잔디축구장이 동
대문 운동장과 부산 구덕운동장 2군데 뿐인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당시 인천이나 수원같은 대도시 대표적인 공설운동장도 잔디가 없고
맨땅 이었는데 전국에 다른 대도시 라고 해서 특별할것이 없을것 같습
니다

그당시 전국 소년체전이나 전국체전 같은것을 출전했을때를 기억해
보면 운동장 맨땅에서 개회식 폐회식을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또 한가지 기억은 당시 효창구장은 축구전용구장으로서 프로축구가 없
던 당시, 실업축구와 대학축구를 전문으로 경기하던 축구장 이었는데
그러한 효창구장이 맨땅 이었습니다

그당시 흑백tv로 축구중계를 봤던 기억이 아직도 있는데 비가 오는 우
중 경기에서 빗물이 맨땅에 부분부분 고였는데 그러한 곳에서 물탕을
팅기면서 축구를 하던 모습을 중계 했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효창구장은 83년 세계청소년 축구 4강 기념으로 인조잔디를 깔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이전에는 인조 잔디 조차 없던 구장이었다는것 아닙니까

그와같은 열악한 축구현실에서 83년 멕시코 청소년 축구 4강은 정말
신화중에 신화 일수 밖에 없는 경기였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한 신화적인 순간을 영화로 만들면 반드시 세계적인 영화가 될것
으로 확신 합니다

지금 한국은 잔디구장이 인조잔디 포함 전국에 수천개~1만개는 될것
같으며 프로축구 3부리그 까지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0년전, 1983년 당시 멕시코 청소년 축구대회에 참가했던
나라들은 지금의 한국수준이었거나 또는 지금의 한국보다 더 좋은 훌륭
한 조건에서 출전한 팀들인데

그러한 나라들을 이기고 4강에 올랐다는 것은 신화중에 신화로 100번
강조해서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 합니다

이러한 감동과 감격의 순간이 영화로 안 만들어 지면 도대체 뭐가 영화
로 만들어 져야 된다는것 입니까 반드시 영화로 만들어 져야 될것 입니다

추신 펌글--------------------------------------

그당시 박종환 감독과 동고동락을 하면서 열악한 조건에서 피땀어린 노력으로
좋은 성적을 냈던 당시의 박종환 감독의 제자들 거의 전부는 박종환 감독을 진
정한 스승으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과거의 추억을 아름답게 생각하고 보람과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
니다 그러니까 박종환 감독과 피땀어린 노력을 같이했던 해당 직접적인 당사자
들은 그때 그순간들을 보람과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제3자인 박종환 반대파들은 뭘 안다고 그당시 구타와 기합을 가지고 인권이니
뭐니 하면서 비판을 한단 말입니까

구타와 기합을 하되 발전을 위한 회초리 개념인지, 아니면 학대와 인권침해 개
념인지 직접당사자인 선수들이 가장 잘 알수 있는것 입니다

자식의 발전을 위한 부모같은 회초리 개념인지, 아니면 악덕 계모같은 학대 개
념인지 누구나 구분할수가 있을것이며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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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80년대 스포츠계에 만연된 구타문화 기합문화를 비판하는데 그러나 그당
시는 스포츠계만 그런것이 아니고 사회 전 분야가 마찬가지 였지요

군대 학교 직장 마을 심지어는 가정에서도 구타가 많았습니다 마을에서도 선배들
의 구타가 심했지요

방송인들 연예인들도 걸핏하면 방송국 옥상에서 집합을 당했고 구타와 기합을
받았다고 합니다

어떤 구타던지 어떤 기합이던지, 자식의 발전을 위한 부모같은 회초리 개념인지
아니면 악덕 계모같은 학대 개념인지 누구나 구분할수가 있을것이며 그것이 중
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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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80년대 노가다를 할때 40킬로짜리 시멘트 200포대를 10층까지 한포대
한포대 인부들이 직접 계단을 통해서 날랐습니다 엄청난 노동력 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크레인으로 두세번이면 시멘트 200포대 10층까지 단번에 나를수
있습니다

지금의 잣대로 70년대 80년대 노가다는 모두가 인권침해였고 학대였다고 모든
걸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서는 안될것 입니다

그시절 그 힘들던 노력으로 도시를 만들고 아파트를 만들고 땀흘려 노력한 사람
들은 그래도 그시절이 좋았다고 말 합니다

추신 펌글 --------------------------

박종환 감독은 93년 94년 95년 일화 프로축구단을 3년연속 우승시킨 업적도 있습니다
당시 5년연속 6년연속 우승도 계속 가능한 수준이었지만

그러나 축구계의 농간으로 박종환 감독을
마치 98프랑스 월드컵 감독으로 임명할것처럼 임시 국가대표 감독으로 임명하는 바람에
프로축구에서 하차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예행연습으로 아시아컵 대표팀 감독직을 맡게 했는데 96년 아시아컵 대회에서
이란에게 크게 패하는 바람에 국가대표직도 하차하게 되면서 프로감독도 안되고
국가대표팀 감독도 안되고 지나고 보면 뭔가 음모로 보이며 박종환 퇴출작전에
속아넘어간듯 이상하게 생각하는 축구팬들이 많았습니다

당시는 국내 축구계에는 파벌 학연 지연이 매우 심각할때 였으며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은 박종환 감독은 학연과 엘리트 축구계에서 왕따 취급을 많이 받고
있을때 였습니다

당시는 월드컵 감독을 국내파로 지정할때 였는데 98프랑스 월드컵 감독으로
국내 감독중에서는 누가 뭐래도 3년연속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는 박종환 감독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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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환 감독은 춘천고 출신이며 고향은 북한 이지만 춘천이 고향같은 사람이며
강원도와 춘천의 영웅이었습니다

강원도 프로축구단이 창단될때 강원도민들의 염원은 초대 감독으로 박종환 감독을
열열히 염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당시 한나라당 김진선 강원도지사는 강원도민들의 염원을 무시하고
다른 감독을 초대 감독으로 임명했습니다

강원도 프로축구단은 창단직후 엉망징창으로 변해갔고 임원들의
무분별 법인카드 남발 낭비적인 축구단 운영으로 도마위에 오르는등 개판으로 변해갔고
성적도 하위에 머물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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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환 감독은 대구프로축구단 창단때 초대감독으로 임명되어
그당시 열악한 대구프로축구단을 한때 리그성적 1위까지 올리는등
열악한 팀을 리그성적 상위권으로 올려 놓았습니다 왠만해선 불가능한 성적이었습니다

대구팀이 창단된후 박종환 감독체제로 2년이던가 점점 자리를 잡아가면서
계속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 팀을 맡기면 우승도 가능할것으로
축구팬들은 기대가 컷지만 그러나 무슨 이유로 단장이 바뀌었던가 뭐던가
구단에 변화가 생기면서 박종환 감독도 퇴출되고 말았습니다

하여간 박종환 감독은 한국의 축구계에서 학연등 엘리트 축구인들에게
왕따당하는 축구인 이었습니다

그러나 박종환 감독은 평생동안 열악한 창단팀만 맡아서 우승을 만들어 내는
우승 제조기 였습니다 박종환 감독의 업적은 프로축구단에만 있는것 아닙니다
고교축구단 실업축구단 등 평생을 수십년동안 수없이 많은 우승 횟수를 기록하고 있는
우승 제조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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