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 "이병기, '보수단체 창구 단일화' 요구" vs 이병기 "사실무근"
서정갑 "이병기가 창구 하나로 해야 쉽게 (돈을) 넣는다는 거였다"
<시사저널>은 10일 인터넷판 기사를 통해 복수의 보수 진영 유력인사들의 증언을 빌어 이같이 보도했다.
<시사저널>에 따르면, 이병기 전 국정원장이 보수진영 유력 인사들과 회동한 시점은 국정원장으로 재직 중이던 2015년 2월12일이다. 이 실장이 대통령비서실장으로 공식 내정된 것은 같은 해 2월27일로, 이 실장이 국정원장에서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옮기기 보름 전이었다.
회동에 참석했던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은 5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원세훈 국정원장이 법정구속 되지 않았느냐. (그래서) 법정구속하는 것을 반대하는 신문 광고를 냈다. '종북 세력과 맞서 싸운 국정원장을 구속하면 앞으로 종북 세력과 싸울 때는 판사들이 총 들고 와서 싸울 것이냐'고 (광고를 통해) 강하게 이야기했다”며 “그날 따라 국정원에서 오찬 연락이 왔다. (그래서) 내가 신문을 들고 갔다. ‘오늘 아침에 이렇게 (광고를) 냈는데 우리 시민단체가 이렇게 하면 전임 국정원장 예우 차원에서라도 국정원에서 브리핑 한마디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이 자리에는 이병기 당시 국정원장과 국정원 직원을 비롯해 국민행동본부․애국단체총협의회(애총협)․재향경우회 등 내로라하는 보수단체의 대표들이 참석했다.
구재태 재향경우회 회장은 “그 때 10여개 단체가 참석했다”며 “시국 관련해서 공적으로 모이자고 해서 간 것이다”고 밝혔다.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은 “그 때 오찬 모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라며 “다들 나라를 위해 일하는데 서로 얼굴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자리이다”고 설명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도 “나라를 위해 고생하시는 분들끼리 점심 한 끼 하는 자리였다”며 회동 사실을 인정했다.
이 원장은 이 자리에서 보수단체 대표들에게 ‘창구를 단일화’할 것을 요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서정갑 본부장은 “이병기 원장이 ‘우파 진영이 하나로 뭉쳤으면 좋겠다’고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중요한 단체인 국민행동본부랑 해서 애총협이랑, 재향(군인회), 고엽제(전우회), (재향)경우회 이런 거”라고 밝힌 후 “이 양반(이 원장)이 하는 얘기가 돈 지원해 주는 창구를 하나로 해야 쉽게 그 창구에다 (돈을) 넣는다는 거였다”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구재태 회장은 “(이 원장이) 집회를 각 단체에서 나눠서 할 것이 아니라 (창구를 단일화해서) 한 단체에서 하는 것이 어떠냐고 이야기를 했다”며 “집회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그 집회의 성격을 잘 아는 단체가 하는 게 맞다고 (이 원장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 우리(경우회)가 주도할 때 다른 단체들이 참여하는 건 광고를 내니까 알아서 하는 건데 무슨 한 단체가 주도해서 똑같이 하는 건 안 맞는 거지”라고 말했다.
반면 고영주 이사장은 “서로 덕담하는 자리였지, 시국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유동열 원장은 “비공식 모임이었는데 이 모임을 기자에게 말한 사람들의 저의가 의심스럽다”라고 밝혔다가 통화 말미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공식적인 답변이다”고 말했다.
단일화 창구로는 사실상 애총협이 지목됐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서 본부장은 “(이 원장이) 애총협이라는 말은 그때 직접적으로 안하고 ‘한 단체를 이렇게 해서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내가 나중에 애총협의 공문 사업계획을 봤다. 사업계획에 ‘애총협의 목적과 방침에 부합되는 단체가 하는 일에 대해서만 지원한다’고 돼 있다”며 “지들(애총협)이 도네이션(기부)을 받아가지고 (다른) 단체에 집회나 뭐할 때 지원해준다는 것이다. 남들이 보면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라고 말했다. 서 본부장은 “우리는 ‘애총협에 뭐든 몰아줘서 애총협에서 여기 단체들한테 나눠준다, 애총협에 양손 살살 빌어야 몇 푼이라도 받아먹게끔 만드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고 직감적으로 느꼈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권 때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애총협은 육군 대장 출신의 이상훈 전 국방부 장관이 상임의장을 맡고 있다. 노태우 정권 때인 1988년 국방부 장관을 지낸 이 상임의장은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회장도 두 차례 역임한 바 있다. 서 본부장은 “(이병기 원장과 이상훈 의장이) 노태우 대통령 때부터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30년지기다”고 말했다.
애총협은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인 2013년 ‘국가안보의식 고취운동’이라는 사업으로 5300만원의 국가보조금을 받았고, 2014년에도 비슷한 사업으로 4000만원, 2015년에는 3500만원, 2016년에는 4000만원을 지원 받았다. 지금까지 모두 1억6800만원을 받은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보수단체 관계자는 “공개가 되는 국가 보조금이 전부가 아니다. 창구 단일화라는 것은 전경련이 어버이연합에 돈을 준 것처럼 다른 루트를 통해 들어오는 돈을 하나의 단체를 통해 받겠다는 뜻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창구 단일화를 국정원장이 직접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많은 의미를 지닌다”고 지적했다.
<시사저널>은 "이병기 실장의 휴대전화로 여러 차례 연락을 하고 문자를 남겼다. 또 대통령비서실에도 취재 목적을 밝히고 연락해 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면서 "하지만 이 실장으로부터 답변은 오지 않았다. 다만 청와대 대변인실은 9일 '전혀 사실이 아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고 전했다.
한편 이병기 실장은 보도후 CBS와의 통화에서 "만난 건 사실이고 기억이 난다"고 회동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어느 한 곳에 돈을 몰아 줄 테니 그리로 다 모이시오', 그랬다는 게 말이 되느냐. 터무니없는 소리에 대응하고 싶지 않다"며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그는 이들과의 회동 이유에 대해선 "초청 단체는 등록단체들이었고 회원 수도 꽤 되는 곳들이었다. 대민소통 차원의 통상적 활동이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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