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대통령선거의 해를 맞아 불법정치자금 예방 차원에서 올해 기업들의 비자금 조사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국내 최대제약업체인 동아제약에 대한 비자금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제약 비자금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최근 3연임이 확정된 강신호 전경련 회장의 거취도 불투명해지는 등 일파만파의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국세청 "대선의 해, 불법 대선 비자금 차단에 주력"
전군표 국세청장은 29일 오전 권오규 경제부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전국세무관서장회의에서 올해 세정운영 중점 추진 중 하나로 '기업 투명성 제고'를 꼽은 뒤, "대선을 앞두고 불법 정치자금 문제가 재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이를 조기에 차단하기 위해 기업의 비자금 조성 관련 정보수집을 강화하고 세무조사 과정에서 비자금 조성 여부를 철저히 검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세청은 이를 통해 불법적인 자금 유출 혐의가 포착되면 금융추적 조사를 벌여 해당 자금의 용처에 따라 불법 정치자금일 경우에는 상속세나 증여세를 과세하고 뇌물 등 용도로 사용됐을 경우에는 배임수재자 등에 대해 소득세를 과세하기로 했다. 추적이 곤란할 경우에는 검찰에 수사를 의뢰할 방침이다.
국세청은 이밖에 그동안 세무조사 사각지대로 지적돼온 교육.장학재단, 종교재단, 사회복지재단 등 이른바 '공익법인'의 세법 위반 여부도 상시 관리하고 운영자금의 사적인 횡령 등을 철저히 검증, 위법 적발시 세금을 추징하기로 했다.
대선 불법비자금 사전 차단에 세정 역량을 집결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전군표 국세청장. ⓒ연합뉴스
건설업체 및 하도급업체 주목
국세청은 이같은 방침은 대선을 앞두고 역대 대선때마다 횡행했던 불법 대선비자금 거래를 사전차단하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강력한 의지 표명으로 풀이된다.
29일 정부와 국세청에 따르면, 국세청이 대선 비자금과 관련해 우선 주목하는 곳은 건설업체로 알려지고 있다. 2002 불법대선자금 수사에서도 드러났듯, 대다수 역대 불법대선자금이 그룹 건설계열사 등에서 조성됐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건설업계가 지난 수년간 '단군이래 최대 호황'을 구가한 만큼 또다시 건설사가 비자금 창구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세청은 이와 함께 대기업 하도급업체들에도 주목하고 있다. 대기업이 하도급을 주면서 비자금 조성을 주문하고, 이에 부득이 비자금 조성에 협조하고 있는 하도급업체들이 상당수 있음이 종전의 대기업 비자금 수사에서 드러난 바 있기 때문이다.
동아제약이 제1호? 넉달간 세무조사중
국세청의 비자금 수사 방침에 재계는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 과거 전례를 볼 때 국세청이 비자금 수사를 올해 세정 중점사업으로 선정한 만큼 가까운 시일내 적발 기업이 나타날 것이라는 경험법칙 때문이다.
이와 관련, 제약업계 1위 동아제약이 최근 넉달간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것을 필두로 10여개 제약회사가 정기세무조사 등을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재계 안팎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본지 확인결과, 동아제약은 지난해 10월 정기세무를 받아 당초 11월말 세무조사가 끝날 예정이었으나 그후 세무조사 기간이 연장돼 현재도 세무조사를 계속 받고 있다. 국세청의 세무 조사 연장에는 투서 등이 한 작용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진행중인 국세청 세무조사의 양대 포인트는 동아제약 간판 제품인 ‘박카스’의 허위 세금계산서 발급과, 하도급 비자금 조성 여부.
우선 '박카스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선 박카스 사업부를 비롯해 병원지원팀, 관재팀, 광고팀, 총무팀 등 주요 부서가 자료 압수 등을 통해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박카스'는 요즘 '비타500' 등에 밀려 고전하고 있으나 여전히 동아제약 매출액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간판상품. '박카스'는 일반의약품인 까닭에 약국에서만 판매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관행'이란 명분아래 수퍼마켓,이용원, 안마시술소 등에서도 유통되고 있다. 동아제약은 지난 2005년에도 수십억원대 박카스를 불법유통시키다가 국세청의 특별 세무조사를 받은 바 있다.
국세청은 이와 별도로 동아제약의 하도급 비리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중이다. 국세청의 하도급 비리는 크게 동아제약의 모든 건설공사를 수의계약으로 독식하고 있는 K공영(주)과, 박카스 병을 생산하는 J공업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K공영의 경우 동아제약의 서울 용두동의 신사옥 공사를 비롯해 물류공장인 평택 용마로지스, 천안공장, 원주공장의 공사를 맡아 공사비 부풀리기 등의 방식으로 비자금을 대신 조성해준 의혹을 사고 있다. J공업은 박카스병을 생산해 공급하면서 병값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세청은 이렇게 조성된 비자금 상당 부분이 약사 등에게 판촉 리베이트로 사용됐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개중에는 정-관계로 흘러간 돈도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으며, 가까운 시일내 조사결과를 검찰에 통보한다는 방침으로 알려져 동아제약측을 긴장케 하고 있다.
동아제약의 경우 오너인 강신호 전경련회장이 회사 경영권을 본처 소생인 강문석 수석무역 대표 대신 후보 소생인 강정석 동아제약 전무(동아오츠카 대표 겸임)에게 물려주려 하면서 부모-자식간에 치열한 경영권 분쟁을 밑고 있는 기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신호 회장은 지난주 전경련회장단회의에서 차기 전경련회장으로 '3연임'이 확정됐으나, 동아제약 비자금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강 회장의 3연임은 무산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