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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놓는 대책마다 족족 '아파트값 폭등'

[盧정권의 부동산 망국사]<3> 건설업계 대변자들

김진표가 ‘유도’한 주상복합아파트-재건축아파트 투기

노 대통령이 김진표 경제팀을 적극 감싸는 사이에 재경부, 건교부 등 부동산 주무부처는 연일 ‘부동산투기를 부추기는 부동산투기 대응책’을 쏟아냈다.

재경부의 경우 투기과열지구의 일반 아파트에 대해선 분양권 전매금지를 발표하면서, 유독 아파트값 폭등의 진원지인 주상복합아파트에 대해서만은 분양권 전매금지를 할 수 없다고 고집을 피웠다. 당시 타워팰리스가 폭발적 인기를 끌면서 강남 곳곳은 물론 강북의 강변지구 및 분당 등 신도시에도 마천루를 연상시키는 40~50층대의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가 쭉쭉 하늘로 치솟고 있었으며, 이들 주상복합아파트에는 분양 때마다 수많은 투기세력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치루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진표 부총리는 분양권 전매 제한을 안받고 청약통장조차 필요 없는 주상복합아파트에 대해서만은 “그 어떤 규제도 가할 수 없다”고 저항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의 경우 개발에 수천억원대 선(先)자금이 필요해 자금력이 풍성한 재벌 건설사만이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이라며 "김 부총리가 유독 주상복합아파트만을 전매금지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재벌을 의식했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강한 의혹의 눈길을 던졌다. 본디 ‘재벌 친화적’이라는 김부총리의 명성을 재확인시켜주는 대목이었다.

마치 ‘다음 아파트 투기는 주상복합아파트에서 하라’고 안내해주는 식의 ‘김진표 아집’은 당연히 시중의 부동자금이 주상복합아파트로 쏠리게 해 주상복합아파트 값을 더욱 폭등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노무현 정부 출범 석달 뒤인 5월14일 일반아파트의 분양권 전매제한을 강화한 정부의 ‘5.8 조치’후 처음으로 분양하는 주상복합아파트인 삼성물산의 마포 ‘트라팰리스’ 청약 현장. 이곳에는 첫날부터 하루 평균 1만여명씩의 청약자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청약자들이 길게 장사진을 이룬 분양 현장은 누구 눈에도 분명 투기장이었다. 모델하우스 안팎에는 수많은 ‘떴다방’(이동중개업소)이 청약자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명함을 건네거나 즉석상담을 벌이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정부의 평소 주장하듯 중대형 아파트에서 살고 싶어하는 실수요자들이 모여든 게 결코 아니었다.

이어 5월26~28일 사흘간 청약을 받은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주상복합아파트 ‘스타시티’에는 8만9천84명이 청약신청을 해 경쟁률이 무려 75.8대 1에 달했고 지난 26일 하루만 청약받은 오피스텔에도 5천1백69명이 몰려 38.9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특히 제일 인기가 높았던 아파트 1군(39~45평형)의 경우는 2백63가구 공급에 3만3천7백7명이 몰려 1백2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처럼 경쟁률이 높다 보니 사흘간 모인 청약증거금만 아파트 2조6천9백40억8천만원, 오피스텔 5백16억9천만원 등 도합 2조7천4백57억7천만원에 달해 종전의 모든 기록을 경신했다.

이런 광적인 청약 열기는 당연히 아파트값 폭등의 진원지인 주상복합아파트에 대해서도 즉각 분양권 전매금지를 해야 한다는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정부는 막판까지 전매금지를 안 시키려 필사적 저항을 했다.

트라팰리스 등의 투기판이 사회적 비난여론을 낳자 정부와 민주당은 5월14일 이 문제를 놓고 당정협의를 가졌으나, 재경부-건교부 등의 강력 반대로 결론을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 건교부는 회의후 "청약이 과열양상을 빚으면 모르겠으나 아직까지 주상복합 분양권 전매를 검토한 적이 전혀 없다"며 마치 청약이 과열상태가 아닌 것처럼 주장했고, 재경부 역시 "주상복합 아파트 계약률은 60%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궤변을 펴며 전매금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재경부와 건교부의 건설족적 태도는 당연히 여론의 거센 비판을 야기했다. “참여정부, 출범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노골적으로 재벌 편을 들기냐”, “벌써부터 떡고물이 탐난다는 게냐”는 등의 비난여론이 쇄도했다. 결국 며칠 뒤인 5월23일 김진표 부총리는 주택관계장관 회의를 갖고 “3백세대 이상의 대형 주상복합아파트에 대해서만 오는 8월부터 분양권 전매를 제한한다”는 이른바 '5.23 주택가격안정대책'을 발표해야 했다. 하지만 5.23 대책도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기란 종전 대책들과 마찬가지였다.

가장 큰 허점은 ‘재건축 아파트’의 분양권 전매를 계속 허용키로 한 것이었다. 김진표 부총리는 "재건축 아파트는 조합 아파트와 다르다"며 "재건축 아파트의 분양권 전매를 금지할 경우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건축 아파트 분양권 전매를 계속 허용키로 한 것은 ‘앞으로는 재건축 아파트를 놓고 아파트 투기를 하라’는 정부 안내문에 다름 아니었다. 그후 시중 부동자금은 송파구, 서초구 등의 강남 재건축 아파트로 쏠리면서 이번에는 재건축 아파트가 폭등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2003년 아파트값 폭등의 주역들인 김진표 경제부총리와 최종찬 건교부장관이 환담을 나누고 있다. 최장관은 국내굴지의 건설그룹의 사위이기도 했다. ⓒ연합뉴스


부동산투기를 부추기는 데에서는 건교부 역시 재경부 못지않았다.

건교부는 5월9일 "공급을 늘려 부동산값을 잡겠다"며 경기 김포, 파주에 강남 수요를 대신할 신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즉각 김포, 파주의 부동산 매물이 사라지고, 두배의 위약금을 물고 매매계약을 파기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등 땅값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건교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들 신도시 후보지가 서울 서부권에 위치하고 있어 당초 정부가 신도시 건설의 명분으로 내세운 중상류층 전용 신도시 건설을 통한 강남 아파트값 하락 주장과 상치된다"는 비판이 일자, "필요하다면 강남과 가까운 서울 청계산 주변 등 1~2곳을 연내에 신도시로 추가 선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연히 후보지로 거명된 청계산 일대의 과천, 판교, 인덕원의 아파트값과 땅값이 폭등했다.

재경부와 건교부 등의 ‘아파트 투기를 부추기는 아파트 안정대책’을 지켜보던 국민들은 한가지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내놓는 대책마다 족족 도리어 부동산값을 폭등시키는 이들의 계속되는 정책 실패가 단순히 ‘무능’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을 갖게 된 것이다. 한 조사결과가 이런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매일경제신문>의 5월21일 조사결과, 부동산 정책을 담당하는 재경부.건교부.행자부.국세청.금융감독위원회 등 5개 부처의 국장급 이상 고위 간부 22명 가운데 지방 출신인 김두관 행정자치부장관을 제외한 21명 가운데 김진표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18명이 강남ㆍ서초ㆍ송파구 등 이른바 ‘강남 3인방’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밖에 최종찬 건교부장관의 장인이 굴지의 건설업체 오너라는 점 등 ‘이해상충’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동산 정책을 펴는 관료들에 대한 국민 불신은 극에 달했다.

박승 한은 총재의 ‘은평구 발언’ 파문

아파트값 폭등에는 재경부, 건교부 외에 ‘거품 방어’에 본원적 책임을 갖고 있는 한국은행도 한 몫 했다.

한국은행은 노대통령 취임 석달 뒤인 5월13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부동산투기 조장 우려에 따른 민간 경제연구소들의 이례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콜금리를 4.25%에서 4.0%로 0.25%포인트 내렸다. 금리인하는 1년만의 일이었다.

금리인하는 그해 3월 김진표 경제부총리가 박승 한국은행 총재와 손잡고 강력추진하려다가 경제전문가들은 물론, 집권 민주당조차 반대해 ‘미수’에 그친 경기부양 카드였다. 또한 5월 금통위 개최 전에도 이례적으로 삼성경제연구소, 현대경제연구원 같은 대기업 소속 민간연구소는 물론, 한국금융연구원같은 국책연구소까지도 한결같이 금리인하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들의 반대이유는 “금리인하를 해봤자 국내외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를 안하고 있는 기업들이 투자를 할 리가 없고 은행들이 신용불량자들나 한계기업에게 돈을 빌려줄 리도 만무하며, 0.25%포인트의 금리인하 갖고서 기업의 금융비용 절감 운운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라는 것이었다. 이들 연구소는 반면에 “금리를 낮추면 부동산투기만 부추겨 끝내는 거품이 터지면서 일본과 같은 장기복합불황에 빠져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은노조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금통위 개최 직전인 5월9일 교수, 경제연구소 직원, 국회의원, 언론사 등 외부전문가 2백23명과 한은 직원 53명 등 모두 2백7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응답자의 62.3%가 현시점에서 콜금리 인하는 경기부양에 별 효과가 없고 부동산투기만 확산시킬 것이라는 부정적 내용이었다.

하지만 한은 금통위는 금리인하를 강력 희망하던 재경부와 ‘코드’를 맞춰 금리인하를 강행했고, 금리인하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박승 한은 총재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선언과 사스 등의 영향에 따른 경기침체로 투자, 소비가 극도로 위축됐다"며 "정부가 경기부양을 하지 않을 경우 성장률은 3%대로 하락할 것"이라고 밝혀, 금리인하가 경기부양용임을 분명히 했다. 대선 때에는 집권시 “해마다 평균 7% 성장”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취임직후에는 “5% 성장”을 약속했으나 3% 성장도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위기감이 확산되자, 몸이 달은 참여정부가 총체적으로 경기부양에 나선 것이다.

이날 박 총재의 발언 가운데 세간의 큰 파문을 불러일으킨 것은 중앙은행 총재의 부동산투기 인식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은평구 발언’이었다. 박 총재는 작금의 부동산 투기와 관련, "이것은 한국경제의 특이 상황이다. 불경기와 부동산 투기는 상충되는 것이다. 마치 폭한과 폭서가 같이 있는 상황이다“라며 "한은총재인 나는 현재 강북 은평구 단독주택에서 20년 동안 생활중이다. 그러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값 차이가 없으며 팔려고 해도 안 팔린다. 살 사람이 없다. 현재의 부동산 투기는 특정지역 특정계층의 부분적 현상으로 신행정수도와 재개발에 좇아 다니는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따라서 "이런 일을 잡는 데 한은 금리정책을 동원하기보다는 세금이나 전매규제와 같은 행정조치로 특정인과 특정지역에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금리인하의 효과여부에 대해 한계가 있고 부동산에도 마찬가지이다. 금리를 동결해도 부동산 투기에 효과를 미치기는 역시 한계가 있게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은평구 발언'으로 파문을 불러 일으켰던 박승 당시 한은총재. 그가 집값이 안오른다고 푸념했던 은평구도 올 들어 서울시의 뉴타운 개발로 폭등했다. ⓒ연합뉴스


‘은평구 발언’은 당시 아파트값 폭등에 몸서리치던 전국 국민의 거센 반발을 야기해 인터넷 뉴스사이트마다 세상물정이 어두운 박 총재를 비난하는 글이 쇄도하고, 네티즌들의 항의글 때문에 한은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로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아파트 투기는 ‘강남->수도권->비강남->전국’으로 번지는 전파 공식을 갖고 있다. 삼척동자도 아는 공식이다. 요즘에는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서면서 신규 아파트 값은 폭등하고, 반면에 비강남이나 지방의 낙후 단독주택이나 연립주택 등은 값도 안 오르고, 팔려고 해도 팔리지 않으면서 슬럼화하는 ‘주택 양극화 공식’까지 가세하고 있다. 한 예로 국민은행이 지난 1995년부터 2005년까지 10년간 주택값 변화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지난 10년간 서울의 아파트 평균가격은 배(100.8%)가 오른 반면 대표적인 서민주택인 연립주택 값은 5.8%, 단독주택 값은 17.5% 오르는 데 그쳤다. 전국 통계는 더욱 심각해, 전국 아파트의 10년간 가격 상승률은 66.1%였던 반면 단독주택 가격은 도리어 6.8% 하락했고 연립주택 가격 상승률은 2.3%에 그쳤다.

박 총재는 기초 흐름조차 인식 못하고 부동산 투기가 별문제 아닌 양 일축하는 최악의 발언을 한 셈이다. ‘투기의 파수꾼’이어야 할 한은 총재의 안이한 인식은 아파트 투기 광풍을 한층 부추기는 또 하나의 촉매 역할을 했다.

강남의 궤변, “지진 발생할지 모르니 재건축 허용해야”

노무현 대통령이 김진표 경제팀을 감싸고 돌고 재경부, 건교부, 한국은행 등이 연일 투기 시장에 휘발유를 뿌리면서 강남에서 불붙은 아파트값 폭등은 목동과 신도시 등 ‘준(準)강남’ 지역으로 번지고, 이어 전국 대도시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2003년 8월, 마침내 강남 아파트의 평균 평당가격이 2천만원을 돌파했다. 앞서 4월에 1천7백만원대였던 강남구 아파트 평당가격이 넉달만에 2천만원을 돌파했고, 건교부의 ‘청계산 신도시’ 개발 발언에 의해 과천의 아파트도 순식간에 2천만원을 돌파했다. 9월 들어서는 송파구 아파트가 2천만원을 돌파하면서 ‘2천만원 클럽’에 합류했다.

이번 아파트값 재폭등의 견인차는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였다. “재건축 아파트의 분양권 전매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 허용하겠다”는 정부 방침 발표이후 시중의 투기자본이 재건축 아파트로 앞다퉈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8월 한달 사이에만 1억원이 넘게 오른 재건축 아파트가 강남지역에서만 무려 1만가구에 달했다. 특히 재건축아파트가 운집한 송파구의 경우는 9월 한 주에만 아파트 매매가격이 5.94%나 폭등하며 아파트 투기를 견인했다.

10여평에 불과한 재건축 대상 아파트 시가가 7~8억원을 넘어 그후 10억원대까지 폭등을 거듭한 데에는 정부의 투기 조장 외에, 지역주민 표를 의식해 재건축 투기를 부채질한 지방자치단체의 ‘집단 이기주의’도 큰 몫을 했다.

재건축 규제를 완화, 재건축 투기를 부채질하려는 강남권 지자체들의 노력은 집요했다. 한 예로 강남, 송파등 강남권 구청장들이 주축이 된 ‘서울특별시구청장협의회’는 5월13일 구청장과 학자, 건설업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재건축정책토론회'를 열고 재건축 규제의 대폭 완화를 주장했다.

이들은 “강남 재건축 추진 아파트들의 가격상승은 주변아파트의 시세와 시장수요를 반영한 정당한 가격”이라며 “최근 발표된 김포, 파주 신도시 건설로는 강남권 아파트수요를 흡수할 수 없고 일산이나 분당처럼 수도권의 기형적인 비대화만 가져올 게 분명한 만큼 재건축으로 강남지역의 아파트 공급을 확대해야 실질적으로 부동산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박모 한진중공업 대표 같은 경우는 “강남의 오래된 아파트들은 내진설계가 잘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지진 등에 대비하기 위해 재건축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황당한 ‘지진 대비론’을 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건축 투기가 사회적 비난을 낳자, 서울시는 “90년 1월1일 이후 준공된 아파트는 40년, 79년 12월31일 이전에 지어진 아파트는 20년이 경과해야 재건축할 수 있도록” 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안’을 마련해 서울시 의회에 제출했다. 평균 수명이 50년 이상이 아파트를 ‘투기 차익’ 때문에 20년도 안돼 부순다는 것은 자원 낭비이자, 부도덕한 행위라는 여론을 반영한 규제안이었다.

그러나 한나라당 소속이 다수인 서울시 의원 13명으로 구성된 도시관리위원회는 9월2일 상임위를 열어 이 조례안을 “93년 1월1일 이후는 40년 이상, 82년 12월31일 이전은 20년 이상으로 기준연도를 3년씩 늦추고, 당초 80년 1월1일부터 89년 12월31일 사이에 지어진 아파트는 1년이 지날 때마다 대상연한을 2년씩 늘리기로 했던 기준연도를 수정 조례안에서는 83년 1월1일부터 92년 12월31일 사이로 3년 완화한다”는 요지의 수정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1981년 준공한 둔촌 주공3단지와 4단지는 당초 2005년에나 재건축이 가능했지만 곧바로 추진할 수 있게 됐고, 82년 준공된 아파트도 당초 2008년에야 재건축할 수 있었지만 이번 조치로 당장 아파트를 다시 지을 수 있게 됐으며, 83년 준공한 고덕 주공5~7단지는 재건축 가능기한이 2011년에서 2005년으로 6년이나 앞당겨졌다.

이 수정 조례안은 4일 시의회 본회의에서 통과해 시 조례규칙심의회를 거쳐 공포, 시행됐다. 수정 조례안 통과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해당 아파트 매물이 급속히 회수되며 값이 폭등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가 투기세력의 온상임을 밝혀주는 실증적 조사 결과가 얼마 뒤 나왔다. 11월2일 KBS 1TV의 ‘한국사회를 말한다’ 제작진이 재건축 대상 아파트인 잠실 주공 2.3단지 총 7천7백30채의 등기부등본을 발급받아 분석한 결과, 실제 거주하는 소유자는 13.9%에 불과했다. 반면에 전체 소유자의 48%(3천7백10채)가 송파(해당단지 거주 제외)ㆍ강남ㆍ서초 등 강남권 거주자로 파악됐다. 이른바 ‘강남 3인방’ 지역내 돈 많은 주민이 아파트투기의 주범이 아니냐는 의혹이 부분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재건축론자들이 내세워온 아파트 주인의 ‘안전한 집에서 살 권리’ 운운이 허구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전체 7천7백30채 가운데 5천5백채가 담보대출로 인해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었고 이들 아파트의 평균 근저당권 설정금액이 1억7천5백만원으로 밝혀져, 이들이 은행돈을 빌려 투기를 하고 있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렇듯 재건축 아파트가 투기의 온상이 되고 있음이 명백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할 뿐이었다.

‘9.5 조치’, ‘판교 학원특구’......정부의 잇따른 닭짓

강남 재건축 아파트에서 재폭발한 아파트값 폭등은 ‘아파트값 인상 루트’에 따라 서울 양천구 목동, 경기도의 분당, 일산 등 비강남과 신도시로 빠르게 확산돼 나갔다. "강남 일부지역에서만 오를 뿐 다른 곳은 문제없다"던 정부를 머쓱하게 만드는 투기 확산이었다. 목동, 분당, 일산 등에서도 강남의 뒤를 이어 2003년 8월 한달간 상승분이 1억원에 육박하는 아파트가 속출했다. 강남 집값이 폭등하면서 ‘준(準)강남권과의 가격 차이가 너무 벌어졌다’는 인식이 확산된 데 따른 결과였다.

재건축 아파트가 부동산 폭등을 견인하자, 건교부는 9월5일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에서 사업계획승인을 신청하는 재건축 아파트는 전체 건설 예정 가구수 가운데 60% 이상을 전용면적 25.7평 이하의 국민주택으로 지어야 한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강남 재건축 지역에 소형아파트를 많이 짓게 해 투기를 막아보겠다는 유아적 발상이었다. 9.5 조치는 결과적으로 중대형 아파트의 희소성 가치를 자극해 강남 일대의 ‘중대형 아파트 값’을 며칠새 수억원씩 폭등시키는 결과만 가져왔을 뿐이다.

한 예로 당시 부동산포탈 <닥터아파트>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9월24일 현재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강동구의 40평형 이상 아파트 가격이 9.5대책 이전보다 3.04%, 분양권은 3.60%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기간 서울 전체 아파트값 상승률은 1.44%, 분양권 상승률은 1.61%에 그쳤다. 아파트값이 가장 많이 오른 곳은 송파구 문정동 올림픽훼밀리 68평형으로 9.5대책후 며칠새 2억5천만원이나 뛰었고, 중대형 주상복합아파트 값도 덩달아 뛰어, 도곡동 타워팰리스 72평형의 경우 1억5천만원, 송파구 잠실동 롯데캐슬골드 67평형과 갤러리아 팰리스도 2억원 이상 올랐다.

내놓는 대책마다 강남 집값을 폭등시키는 건교부의 시쳇말로 ‘닭짓’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건교부는 9.5대책 발표 사흘 뒤인 9월8일에는 ‘판교 학원단지’ 파문을 자초했다.

건교부는 '제2의 강남'으로 키우기로 한 판교 신도시의 분양을 2005년 상반기로 반년 앞당기는 동시에, 여기에 1만평 규모의 '학원단지'를 만들어 강남의 유명학원들을 대거 유치하고 특목고(외국어고)와 특성화고(정보통신고), 자립형 사립 초-중-고, 외국인학교를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건교부 발상은 한마디로 “판교를 '제2의 8학군'으로 육성, 강남 인구를 분산시키며 아파트값 폭등을 잡겠다”는 것으로, 정부가 강남 아파트값 폭등의 근원을 엉뚱하게 ‘학원’에서 찾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판교 학원특구 발상에 대한 비난여론이 빗발치고 교육주무부처인 교육인적자원부도 “사전협의한 바 없다”고 반발하자, 건교부는 ‘아니면 말고’ 식으로 곧바로 이를 백지화했다. 말 그대로 정부가 내놓은 일련의 아파트투기 대책은 ‘무능의 경연장’이었다.

“부동산 투기는 강남과, 행정수도가 세워질 충청 일각의 문제일뿐”이라고 강변하던 건교부가 마침내 10월 들어 부동산 투기가 ‘전국적 현상’임을 공식적으로 시인했다. 건교부는 10월1일 부산의 해운대구와 수영구, 대구의 수성구를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했다. 대구 황금아파트의 경우 32평형 1백35가구 분양에 1만6천명이 청약해 1백38대1의 경쟁률을 나타냈고, 부산 해운대구 e-편한세상 1천1백가구 중 83%인 9백13가구의 분양권이 전매되는 등 최근 이들 지역의 분양시장이 투기세력이 대거 가담한 투기장화한 데 따른 뒤늦은 대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찬 건교부장관은 "전세값은 안정적이다"라는 궤변을 펼치며 "당장 준비중인 대책은 없다"는 안이한 태도로 일관했다.

최 장관은 “전세값은 안정적이다”라는 이유를 들어 아파트투기의 심각성을 부인했으나, 집값(매매가)과 비교한 전세값 비율 즉 ‘전세가율’이 비정상적으로 낮다는 것이 바로 아파트거품이 얼마나 극심한가를 보여주는 지표였다. 이는 아파트를 사는 이들이 이자에는 관심 없고 앞으로도 아파트값이 계속 천정부지로 오를 것이라는 투기심리로 사들이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거품이 없을 때의 정상적인 전세가율은 60%선이다. 그러나 부동산포탈 <닥터아파트> 집계에 따르면, 2003년 9월말 서울 강남권의 송파구 33.2%, 강동구 35.4%, 강남구 35.7%, 서초구 39.1%로 아파트값 폭등 지역의 수치가 모두 30%대로 급락했고 과천은 26.5%까지 내려갔다.

이 수치를 조사하기 시작한 1999년 1월 52.4를 기록했던 전세가율은 2000~2001년 전세값이 급등하면서 2001년 10월 64.4로 정점에 달했다. 그러다가 그후 아파트값 폭등이 시작되면서 하락세로 반전되더니 마침내 서울과 경기도의 전세가율이 각각 45.4%와 49.8%로 99년 조사 이래 최초로 50% 이하로 떨어지고, 아파트값 폭등의 진원지인 강남 3인방은 30%대로 떨어지기에 이른 것이다.

상황이 이런 데도 주무장관은 도리어 “전세값은 안정” 운운하며 부동산투기의 심각성을 은폐하려 애쓰니, 국민들의 절망감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 지지율 폭락, 잇따르는 ‘강남 테러 협박’

참여 정부가 공약과는 정반대로 출범후 아파트값을 거듭 폭등시키자, 당연히 민심이 이반하며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급락했다.

노 대통령은 2005년 중반 지지율이 밑바닥을 헤매자 “나는 취임 초기부터 레임덕에 빠져있었다”고 푸념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른 궤변이다. 노대통령 취임 이틀 뒤인 2003년 2월27일 지지도는 무려 92.2%(TNS코리아 여론조사결과)에 달했다. 대선과정에는 지지자에 따라 양분되나, 일단 선거가 끝나면 새 대통령에게 확실하게 ‘힘’을 실어주는 우리 국민의 현명한 미덕 때문이었다. 이처럼 전무후무하게 높던 노대통령 취임 1백일에는 50%선으로 거의 반 토막 나더니, 10월초에는 30%대 초반으로 또다시 반 토막 났다. 노 대통령 지지율 급락의 원인은 복합적이나,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밝혀졌듯 가장 큰 요인은 노대통령 지지층과 다수 국민을 분노케 한 아파트값 폭등이었다.

위기는 단순히 노 대통령 지지율 급락에 그치지 않았다. 아파트값 폭등이 한창이던 2003년 9월5일 밤 8시께 서울지방경찰청 112신고전화로 신원미상의 40대 남자가 "강남 대치동 모 아파트의 한 동과 고급 주상복합건물의 지하 헬스클럽을 폭파하겠다"는 협박전화를 걸어왔다. 강남 대치동은 학원들이 밀집해 있어, 강남 아파트값 폭등의 진원지 역할을 해온 지역이었다. 협박 전화에 놀란 경찰은 폭발물 처리반과 수색견들을 출동시켜 3시간여 동안 폭발물 수색작전을 벌였으나 폭발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협박전화 발신지를 추적한 결과 지하철 4호선의 미아역 내 공중전화로 밝혀졌다.

그로부터 두 시간여 뒤인 오후 10시30분경 이번에는 잠실 롯데월드 당직실에 “폭발물을 설치했고 곧 폭파시키겠다”는 협박전화가 걸려와 경찰 1개 중대와 폭발물 처리반이 긴급 출동, 수색에 나서 2시간반 동안 롯데월드 내 화장실, 쓰레기통까지 샅샅이 뒤져야 했다. 경찰 조사결과 괴전화의 발신지는 경기도 용인 지역으로 밝혀졌다.
협박전화는 다행히 단순 해프닝으로 그쳤으나, 이런 연쇄 협박은 그 무렵 강남 일대에서 잇따라 발생한 부녀자 납치 사건 등과 맞물리면서 전달에만 아파트 1만채의 값이 1억원이상 폭등한 강남 지역에 대한 비강남권의 ‘적개심’이 표출된 게 아니냐는 긴장된 해석을 낳았다. 요컨대 ‘체제 위기’가 작동하기 시작한 게 아니냐는 우려였다.

이런 해석이 가능한 것은 역사적으로 세계 대공황 등을 거치면서 양극화가 극심해진 사회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많이 목격됐기 때문이다. 한 예로 1929년 대공황이후 미국의 빈부격차가 극심해진 1930년대 중반, 공황과정에 도리어 부를 3배나 불린 록펠러와 카네기 등 굴지의 재벌그룹의 사옥에는 양극화 심화에 분노한 실직자의 사제폭탄이 던져지는가 하면 길거리에서 임원을 향한 린치 행위가 발발하는 등 체계 위기가 심화됐고, 이런 체제 위기는 카네기 등의 대규모 기부를 촉발하는 주요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참여정권, 건설족 덫에 걸리다> 48~63쪽)
박태견 대표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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