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변수'에 친박 긴장-친이 미소
'수도권 친이계' 기대감 높아, 민주-선진당 큰 충격
한나라당의 경우 친박계는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며, 친이계는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짓는 분위기다. 민주당 등 야당은 적잖이 당혹해하는 분위기다. '정운찬 총리' 등장을 차기 대선의 '중대변수' 출현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정운찬 "사람은 정치적 동물"
정 내정자는 익히 알다시피 2년 전인 2007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반한나라당 진영의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였다. 그는 그러나 대선 출마 여부를 놓고 장고를 거듭하다가 그해 4월30일 불출마 선언을 했다. '조직과 자금' 부재가 이유였다.
하지만 그는 그 후에도 '꿈'을 접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 예로 그는 지난 3월7일 MBC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대선에는 조직과 자금이 부족해 출마하지 않았다”며 “사람이 정치적 동물이니까 앞날에 관심 갖는 건 당연하지만 (지금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여건이 안돼 움직이지 않지만, 여건이 되면 움직일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 가능한 발언이었다.
'박근혜 독주'가 계속되던 올 상반기, 친이 진영 일각에서 '정운찬 영입론'이 나돌기 시작했다. 친이계 한 의원은 "정운찬이 진보냐, 보수냐"는 질문을 던졌고 "합리적 보수로 봐야 하는 게 아니냐"는 답에 "그렇다. 그렇다면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는 게 아닌가"라고 반색을 했다. 절대로 박근혜 전 대표에게 정권을 넘겨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친이계 일각에서 '박근혜 대항마'를 찾아왔음을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단기필마'의 한계, 수도권 친이계 움직임이 변수
그러나 '정운찬 총리'가 곧바로 차기대권주자 부상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게 정설이다. 이 대통령과 정 총리내정자는 지난번 대선 때 감정이 상한 바 있다. 정 내정자가 이 대통령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에도 MB노믹스에 대해 계속 비판을 가해왔다. 따라서 정 총리 발탁은 '충청총리', '개혁총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해선 안된다는 지적이 많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 내정자의 입각을 90년 '3당합당'에 비유하기도 한다. 당시 YS는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고 했고, 실제로 집권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는 지적이 많다. 당시는 노태우 정권이 야대여소 국면에서 궁지에 몰린 상황이었다. 따라서 YS는 언제든 '탈당'이란 카드를 사용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소수 상도동계를 갖고서도 집권가능했다.
하지만 지금 이 대통령은 지지율 상승국면에 있다. 더욱이 정 내정자는 '단기필마'다. 3당합당 때와는 환경이 전혀 다르다는 의미다. 언제든지 이 대통령이 버려도 부담이 되지 않는 카드라는 의미다. 일각에서 '일회용 카드'가 될 가능성을 점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러나 다른 일각에서는 친이계에 박근혜 전 대표를 필적할만한 인물이 아직 없다는 점에서 정 내정자의 '가능성'을 읽기도 한다. 정 내정자는 충청 출신으로, 최근 이회창-심대평 결렬로 혼란 상태에 빠진 충청권에서 단기간에 대안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수도권 친이계 의원들이 정 내정자 주변으로 모여들 가능성도 있다. 이들은 영남에 기반을 둔 박근혜 전 대표에게 거리감을 느끼고 있으며, '박근혜 집권 후'를 걱정하기도 한다. 이런 마당에 개혁적 이미지의 '정운찬 총리'는 수도권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기댈 언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정운찬 총리' 발탁에는 수도권 친이계의 입김이 컸던 것으로 알려진다.
친박계 긴장 "박근혜 대항마가 출현했다"
이처럼 나름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정운찬 총리' 출현에 정치권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우선 친박진영의 긴장이 읽힌다. 일부 친박의원들은 "무슨 박근혜 견제? 학자가 정치를 어떻게 한다고"라며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한 친박인사는 "대권 의지가 강한 정운찬의 이해관계와 중도실용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이명박의 이해관계가 일치된 인사"라며 "결국 박근혜 대항마로 정운찬을 쓰겠다는 건데 청와대 계산처럼 그게 쉽게 될 일인지는 지켜보면 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정운찬이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예스맨이 아니라 이명박에 반기를 들고 나와야 한다"며 "그러나 반기를 들면 한나라당에 아무런 입지도 없는 정운찬을 받아줄 그룹이 없다. 이게 정운찬의 딜레마"라고 지적했다. 그는 "물론 정운찬의 등장 자체가 박근혜에게는 달가운 카드는 아니다"라면서도 "그러나 오히려 박근혜 입장에서는 대선 주자로서 소강상태였는데 싸워야 할 상대가 나타난 것이기에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수도권의 한 중립파 중진는 "박근혜 쪽에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거다. 나라도 정운찬이라면 솔깃하는데. 수도권에서는 정운찬의 중도적 이미지에 끌리는 의원들이 많다"며 "적당히 속도조절만 하면서 총리직만 무난히 수행하고 당에 들어오게 되면 수도권 친이를 전부 흡수해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당 당황, 선진당 패닉
민주당 등 야권은 적잖이 당혹해하는 분위기다.
솔직히 민주당은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후 정운찬 내정자 영입을 생각해볼 여력이 없었다. 치열한 헤게모니 전쟁이 불붙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 내정자는 분명 잠재적 영입대상 중 한 명이었다. 그러던 인물이 이명박 정부 총리가 됐으니, 당혹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한 의원은 "정운찬 총리 영입은 과거 인물들끼리 도토리 싸움을 하는 것으로 국민에게 비쳐지는 민주당에 타격일 수밖에 없다"며 "민주당도 어떤 형태로든 외부인사 영입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정 총리 영입이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10월 재보선과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더 큰 충격을 느끼는 쪽은 자유선진당이다. 심대평 탈당으로 원내교섭단체가 깨지는 등 가뜩이나 혼란스런 상황에 예기치 못한 '제2의 충청 총리'까지 출현하자, 잇단 헤비급 펀치를 맞고 크게 휘청대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충청권에서 '정운찬 바람'이 불 경우 선진당의 존립마저 위협받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정운찬 총리' 출현이 과연 향후 정국의 중대변수가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초기에 신선한 바람으로 다가오다가 정 총리 내정자가 국민 기대에 밑돌 경우 그 바람은 순식간에 수그러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변수가 될지, 안될지는 앞으로 정 총리 내정자 하기 나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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