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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철 대법관, 포타스를 아는가"

이상돈 교수 "대법관에겐 한치 허물도 용납되지 않는 법"

전국대법관회의가 20일 충남 천안에서 1박2일 일정으로 시작됐다. '촛불 재판' 개입 의혹을 사고 있는 신영철 대법관 거취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이날 회의에는 전국 법원을 대표하는 판사 75명이 소속법원에서 취합한 의견을 바탕으로 신영철 사태를 토론을 전개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취합된 대체적 의견은 신 대법관이 사퇴해야 한다는 쪽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신 대법관은 자진사퇴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보수적 법학자'인 이상돈 중앙대 법대교수가 19일 자신의 블로그에 신 대법관을 겨냥해, 미국 대법관을 지낸 에이브 포타스를 아느냐고 물음을 던졌다.

이 교수는 수많은 '국선변호인제 도입', '중고등학생의 정치적 표현권 인정' 등 숱한 진보적 판례를 남긴 포타스 대법관이 대학에서 수차례 강연을 행한 뒤 합법적으로 강연료 1만5천달러를 받은 사실 등이 보수진영의 공격을 받자, 1969년 '대법원 권위'를 위해 사퇴한 전례를 상세히 소개했다.

이 교수는 "포타스 사건은 ‘진보 법관에 대한 보수파 정치인들의 반격’이었음이 분명하지만 고위 법관일수록 엄격한 윤리기준을 지켜야 함을 잘 보여 주었다"며 "또한 최고 법원의 권위는 스스로가 엄격한 기준을 지켜나가야만 지켜지는 것임을 잘 보여주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더 나아가 "최고법원의 법관에 적용되는 룰은 ‘유죄로 확정될 때까지 무죄’(Not Guilty Until Proven Guilty)가 아니라 한 치의 허물도 허용되지 않는 ‘제로 톨러런스’(Zero Tolerance) 원칙"이라며 "한 명의 대법관이 신뢰를 잃어버리면 대법원 전체가 신뢰를 잃어버릴 것이며, 그것은 곧 사법부 전체의 신뢰 추락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신영철 파동과 관련, "법관윤리위원회니 법관징계위원회니 하는 장치를 최고법원의 법관에 적용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며 "대법원의 권위 추락을 막기 위해 스스로 결단을 한 탁월한 법률가 에이브 포타스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며 신영철 대법관에게 자진사퇴를 압박했다.

다음은 이 교수의 글 전문.

에이브 포타스 미 대법관. ⓒ 이상돈닷컴

에이브 포타스를 아십니까?

신영철 대법관의 거취 문제가 아직도 거론되고 있는 우리 상황에서 한번쯤 되돌아 볼 인물이 있으니, 그가 1965-69년간 미국 대법관을 지낸 에이브 포타스(Abe Fortas :1910-1982)다.

테네시 주(州)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에이브 포타스는 예일 로스쿨을 탁월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곧장 예일 로스쿨에 조교수로 임용됐다. 당시 예일 로스쿨의 교수였던 윌리엄 더글러스가 그의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윌리엄 더글러스가 프랑클린 루스벨트 행정부 행정부에 참여하자 포타스도 루스벨트 정부의 내무부 등에서 일했다. 2차 대전 후에는 워싱턴의 아놀드 앤드 포터라는 큰 로펌의 파트너가 되어 변호사로 명성을 날렸다.

포타스가 유명해진 계기는 Gideon v. Wainwright(1962년, 미 대법원 판결) 사건에서 절도 누범인 클라랜스 기디언의 대리인으로 대법원에서 변론을 해서 “경죄로 기소된 피고인도 국선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획기적인 판결을 받아 낸 후이다. 플로리다의 감옥에 갇혀 있던 기디언이 자신이 억울하게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자신에게 변호사가 있었으면 무죄가 되었을 것이라는 편지를 맞춤법도 되지 않은 영어로 써서 얼 워렌 대법원장에게 보냈고, 그 편지를 손수 읽어 본 워렌 대법원장은 사건을 다루어 보자면서 에이브 포타스에게 기디언을 대변해서 대법원에서 무료변론을 할 수 있겠냐고 문의했다. 포타스는 흔쾌히 응했고, 그 결과 대법원은 사소한 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는 피고인도 국선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헌법적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뉴욕 타임스의 앤소니 루이스 기자가 이 사건을 ‘기디언의 트럼펫’(Gideon's Trumpet)이란 책으로 펴내서 베스트셀러가 됐고, 영화로도 만들어 졌는데 헨리 폰다가 기디언의 역할을 맡았다.

에이브 포타스는 린든 존슨 대통령과 존슨이 하원의원을 지낼 시절부터 친분이 있었다. 1965년, 존슨은 유엔 대사가 되기 위해 사임한 아서 골드버그 대법관의 후임으로 에이브 포타스를 임명했다. 대법관으로서 포타스는 확실한 진보적 성향을 유지했다. 그는 중고등학생도 정치적 표현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Tinker v. Des Moines School District, 1969년).

얼 워렌 대법원장은 자신이 이루어 온 대법원의 진보적 성향을 포타스가 계승해 주기를 원했다. 1968년 여름, 워렌은 은퇴할 예정임을 밝혔고, 존슨 대통령은 포타스를 후임 대법원장으로 지명했다. 그러나 이 조치는 공화당의 반발에 부딪쳤다. 얼 워렌은 아직 사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존슨 대통령이 후임 대법원장을 지명할 수 있나 하는 문제가 있었다. 더구나 존슨 대통령은 재선을 포기한 레임덕이었다. 공화당과 남부의 보수파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원의 진보적 판결에 반발했다. 이들은 얼 워렌이 이끈 대법원이 초(超)입법부(super-legislature)로 행세해 왔다고 비난했다. 그 비난의 초점은 워렌 대법원장, 더글러스 대법관, 그리고 포타스 대법관을 향하고 있었다.

상원에서 포타스의 인준을 다루고 있을 때 한 언론은 포타스가 아메리칸 대학으로부터 수차례 강연료로 15,000달러를 받았으며, 그 돈은 기업들이 갹출한 것이라고 폭로했다. 상원의 보수파 의원들은 이 문제를 거론하면 포타스 지명을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를 계속했다. 결국 존슨 대통령은 지명을 철회했고, 차기 대법원장은 다음 대통령이 지명하게 되었다.

포타스는 대법관으로서 계속 대법원에 머물렀는데, 1969년 봄에 다른 사건이 폭로됐다. 포타스가 어느 기업인인 운영하는 재단으로부터 자문을 해 주고 기부금을 받기로 약정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그 기업인이 기소되자 포타스는 이미 받은 20,000 달러를 반납했지만 그런 약정을 했다는 자체가 문제가 됐다. 1969년 초에 취임한 닉슨 대통령은 이 기회에 대법원의 구성을 보수 성향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의회의 보수파 의원들은 포타스가 사임하지 않으면 탄핵을 발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워렌 대법원장은 대법원 전체의 위상을 보호하기 위해선 포타스가 사임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그가 그토록 아낀 후배 대법관 포타스에게 사임하도록 권했다. 대법원의 권위를 보전하기 위해선 자신이 사임하는 수밖에 없다고 느낀 포타스는 1969년 5월에 사임하고 변호사 업무로 조용히 복귀했다. 얼마 후 얼 워렌도 은퇴했고, 이로서 미국민의 기본권을 획기적으로 보장한 ‘워렌 대법원’(The Warren Court) 시대가 끝나고, 닉슨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들이 주도한 보수 대법원 시대가 열리게 됐다. 포타스는 자서전을 써보라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은 채 1982년에 사망했다.

포타스가 받았던 강의료와 자문비는 당시로서는 합법적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변호사 협회는 법관이 외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강연료 등에 관해 엄격한 기준을 정하였다. 포타스 사건은 ‘진보 법관에 대한 보수파 정치인들의 반격’이었음이 분명하지만 고위 법관일수록 엄격한 윤리기준을 지켜야 함을 잘 보여 주었다. 또한 최고 법원의 권위는 스스로가 엄격한 기준을 지켜나가야만 지켜지는 것임을 잘 보여주었다.

최고법원의 법관에 적용되는 룰은 ‘유죄로 확정될 때까지 무죄’(Not Guilty Until Proven Guilty)가 아니라 한 치의 허물도 허용되지 않는 ‘제로 톨러런스’(Zero Tolerance) 원칙인 것이다. 한 명의 대법관이 신뢰를 잃어버리면 대법원 전체가 신뢰를 잃어버릴 것이며, 그것은 곧 사법부 전체의 신뢰 추락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법관윤리위원회니 법관징계위원회니 하는 장치를 최고법원의 법관에 적용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대법원의 권위 추락을 막기 위해 스스로 결단을 한 탁월한 법률가 에이브 포타스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김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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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이 3 개 있습니다.

  • 8 7
    111

    판사도 과속위반 하면 벌금 끊고 벌금 내지않으면
    구속하는 국가 있다.....사법부 신뢰문제...

  • 5 11
    나다

    니 전공공부나 해라
    빈깡통 매스컴교수들이 만든게
    imf고 그후의 상황이다.

  • 8 5
    아는가

    아는가
    그분은 이미 원장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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