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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주민이 다 죽어야 대책 나올 거냐"

<현장> 또 '분신'에 태안주민들 격노-절규

"기름 유출로 바다만 죽은 것이 아니다. 이미 3명의 어민이 목숨을 끊었고 바닷가에 나가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 온 주민들의 목숨도 이미 죽었다."

사상 초유의 기름 유출 사고로 생활의 터전을 잃어버린 태안 군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또 한 명의 군민이 분신 자살을 시도했고 삼성중공업에 보낼 어류와 어구를 담는 60대 해녀들은 오열했다.

사고 발생 45일이 지나도록 모르쇠로 일관하는 삼성중공업, 이렇다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정부의 대응 속에서 군민 2명이 목숨을 잃자 군민들은 이제 생계의 막막함을 넘어 생존의 위기에 휩싸여 있는 듯 했다.

또 다시 분신, 분노에 휩싸인 태안주민들

18일 오후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 수산경영인회관 앞에서 태안유류피해대책위원회 주최로 군민 5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 주범, 삼성의 무한책임과 검찰의 엄정한 수사, 정부의 실질적 지원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군민 총 궐기대회를 가졌다.

18일 태안 군민 5천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태안읍 수산경영인회관 앞에서 주민 피해 보상과 삼성 처벌을 촉구하는 궐기대회를 열었다.ⓒ최병성 기자


궐기대회가 시작되기 1시간 전부터 태안군 뿐만 아니라 서산, 보령 등 광범위한 피해지역에서 모여든 주민들은 대회장 곳곳에 '삼성 이건희는 만리포 살려내라', '타살된 태안바다 삼성그룹 살려내라', '정부의 늦장대응 우리어민 다 죽였다' 등의 문구가 적힌 수십장의 플랫카드를 걸고 삼성과 정부를 규탄했다.

태안읍 근흥면 연포 근해에서 20년 넘게 어업에 종사해 온 김모씨(50)는 "40일 넘게 어장에 나가는 대신 기름만 닦고 있다"며 막막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김씨는 "태풍이 몰려 온 것도 아닌데 이렇게 배가 하염없이 묶여있으니 우리처럼 대학생, 중학생 아이 키우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 지를 몰라한다"며 "평생 배 타고 살아온 우리가 무슨 일을 해서 먹고 살겠나. 보상도 보상이지만 저 바다를 어떡할거냐"고 탄식했다.

태안읍 신진도리 바닷가에서 횟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좌원씨(57)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김씨는 "솔직히 정부와 삼성은 아무런 대책도 없는 것 아니냐"며 "방송에서 방제가 잘 되고 있다고 떠들지만 여름에 유화제로 눌러논 기름이 다시 떠오르면 다시 기름 바다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라고 우려했다.

김씨는 "당장 이달까지 얘들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방법이 없다"며 "태어나서 평생을 여기서 그럭저럭 애들 대학도 보내고 살아왔는데 지금은 이 곳을 떠나야 할 판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태안군민들은 삼성중공업과 정부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최병성 기자


"보상도 보상이지만 저 바다를 어떡해야 하냐"

자녀들을 분가시키고 부부가 8년째 펜션을 운영하고 있는 김장치씨(67)는 최근 벼르던 시설투자를 끝냈지만 12월부터 손님이 단 한 명도 찾지 않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바다가 다 죽었는데 뭘 보고 관광객이 오겠느냐"며 "사람이 죽어나는 판이다. 지금 보상금 같고 서로 누가 내느냐로 싸울 때가 아닌데 삼성과 정부가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오후 1시부터 시작된 궐기대회도 역시 삼성중공업과 정부에 대한 성토장이었다.

김진권 태안유류피해대책위 위원장은 "지난 12월 7일,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고 우리에게 늘 주기만 하던 태안바다가 죽었다. 어업도 관광업도 음식점도 건설업도 모두 죽었다"며 "우리 피해주민들은 죽을날만 기다리고 있는 꼴이다"라고 개탄했다.

김 위원장은 "사고가 난 지 40여일이 지나는 동안 가해자인 삼성은 사과 한 마디 없다"며 "이것이 세계 초일류 기업, 1등만 강조하는 삼성의 태도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60대 해녀들이 삼성본관에 보낼 수산물을 수거해 삼성에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최병성 기자


대책위 "특별법 제정, 삼성중공업 사장 구속", 23일 대규모 상경집회

김진묵 서산수협 유류피해대책위 위원장도 "아까운 목숨이 왜 2명이나 목숨을 끊었나, 태안 바다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주민들이 자식들 교육시키고 가족들을 먹여살렸던 곳"이라며 "삼성은 몰래 숨어서 기름 닦는다고 우롱 말고 우리 앞에서 나서서 사죄하고 죽어가는 바다를 살려내라"고 촉구했다.

김 위원장은 정부를 향해서도 "정부는 긴급 설계비 3백억 내려주고 나서 뒷 짐만 쥔 채 방관하고 있다"며 "하루 벌어 사는 사람들이 빚만 늘어가는데 주민들 다 죽고 나서야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냐"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대책위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서해유류사고 특별법 제정 ▲해양환경복원특별법 제정 ▲삼성중공업 및 가해업체의 완전보상 및 검찰구속 ▲서해유류사고 유류특검 등을 촉구했다. 대책위는 또 특별법 제정 일정과 별도의 정부의 선보상, 기름 유출사고의 명확한 진상조사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집회에서는 대책위 관계자 8명이 정부의 신속한 보상을 촉구하며 삭발식을 가졌고 군민들은 목재로 만든 삼성 유조선 모형을 해머로 부수는 퍼포먼스를 가지기도 했다. 또 집회 단상 앞에 놓인 어, 우럭, 조개, 굴 등 채취한 수산물를 폐기하고 어구와 함께 삼성그룹에 전달하기로 하고 오후 3시께 궐기대회를 마무리했다.

대책위는 오는 23일 민노당과 연대해 국회와 삼성 본관 앞에서 3천여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상경집회를 갖는다. 대책위는 또 검찰수사 결과 삼성중공업의 중과실이 밝혀지지 않을 경우 2차 총궐기대회를 열고 투쟁강도를 높여갈 예정이다.

이날 집회 도중 태안 군민 지창환씨가 제초제를 마시고 분신을 시도해 태안 보건의료원으로 후송됐으나 생명이 위독한 상태다.ⓒ최병성 기자


분신시도 지씨, 제초제 음독으로 생명 위독

한편, 이날 집회 도중 또 한 명의 군민이 분신을 시도해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태안읍 동문리 조석시장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대명수산의 지창환씨(58)는 이날 심상정 민주노동당 비대위 대표의 연설도중인 1시 48분께 단상 위에 올라 생수병에 든 제초제를 마셨다. 지씨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자신의 몸에 신나를 뿌리고 입고 있던 잠바에 불을 붙여 분신을 시도했다.

집회장 주변에는 우발사태를 대비해 태안경찰서 소속 사복경찰 40명과 소방차 1대, 응급차 2대가 대기하고 있었지만 지씨의 분신을 미처 막지 못했다. 지씨는 인근 태안 보건의료원으로 이송된 뒤 상태가 위독해 천안 순천향대 부속병원으로 옮겨졌다.

보건의료원과 태안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씨는 화상은 2도에 그쳤지만 제초제(그라목손)로 인해 생명이 위독한 것으로 상태다. 그라목손은 제초제 중에서도 독성이 가장 강해 소주 반 잔 분량 정도가 치사량으로 알려져있다.

주변지인들에 따르면 지씨는 기름 유출 사고가 난 지난 해 12월 7일 이후 횟집 운영이 힘들어지면서 막막해진 생계에 고민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주변에서 지씨를 지켜보던 주민들은 여기저기서 "저렇게 가서는 안되는데, 보상도 받고 바다도 예전처럼 되는 것도 봐야 하는데..."라고 안타까워했다.

태안에서는 지난 10일 소원면 의항리에 고 이영권(66)씨가 기름 오염으로 양식장이 막대한 피해를 입자 이에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데 이어 15일에도 근흥면 마금리 김모(73)씨가 음독 자살을 기도해 16일 오전 숨지는 등 생계를 비관한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태안=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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