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협조하는 시민들을 위협하다니"
이준구, '분리수거 파동' 관련해 박원순 시장에 쓴소리
대책수립에 부심하던 박 시장은 얼마 전 쓰레기회수시설을 찾아 분리수거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했고, 이에 서울시는 부랴부랴 지난달 23일 종량제 봉투 안에 '사용한 핸드타월과 휴지,각종 영수증' 등 종이나 비닐이 들어 있으면 3월부터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전단 수십만장을 배포했다.
이에 시민들은 반발하면서 앞다퉈 문제점을 지적했고, 이 와중에 박 시장의 감정적 응대가 문제를 더 키웠다.
한 시민은 지난달 28일 박 시장의 트위터에 "이건 정말 아니지 않나요...?? 티백포장 종이며, 코푼 휴지를 재활용 업체에서는 무슨 수로 재활용하며, 여성용품 쓰레기를 비닐에 안싸서 그냥 버리라는 건지? 이 정도면 인권침해 수준입니다”라고 불만을 토로했고, 이에 대해 박 시장은 "벌칙 강화할 생각입니다"라고 짧게 맞받았다.
그후 파문은 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고, 이에 이인근 서울시 자원순환과장이 3일 브리핑을 통해 "지난달 23일 배포한 전단지 내용 중 문구 해석 때문에 민원과 문의가 많았다"며 "오해 소지가 있다고 보고 전단지 배포를 중단했다"며 긴급진화에 나서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트위터 시장'이라 불릴 정도로 소통을 중시하던 박 시장은 이번 논란 과정에 적잖은 내상을 입은 모양새다. 박 시장은 그러나 아직까지 이번 사태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어, 쓰레기 배출량을 줄여야 하는 자신의 고심을 알아주지 못하는 시민들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낳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달말 서울대 경제학부를 정년퇴직한 이준구 전 교수는 3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박 시장에게 고언을 했다. 재정학 분야의 석학인 이 전 교수는 MB정권 내내 4대강사업에 강력 반대하는 등, 누구보다 환경보호에 열심인 환경론자다.
이 전 교수는 "과유불급(過猶不及). 최근 서울시가 발표한 쓰레기 종량제 처리 강화방안을 보면서 문득 머리에 떠오른 말"이라며 "시민이 버린 종량제 봉투 안에서 종이나 비닐, 캔 같은 재활용 대상물이 나오면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건 가히 '혁명적' 발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세상 어떤 나라에서 그 정도로 엄격하게 쓰레기 배출을 규제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실 세계를 둘러 보면 쓰레기 종량제를 제대로 실시하고 있는 나라도 그리 많지는 않다. 전반적인 환경 보호의 측면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는 미국도 (지역적으로는 실시하고 있는지 몰라도) 전국적으로는 쓰레기 종량제를 실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종량제 봉투 사용이란 불편을 기꺼이 감수한 우리 국민은 상당히 선진적인 감각의 소유자들이라고 칭찬해 줄 수 있다"며 현재 시민들이 불편을 감수하고 쓰레기 배출량 감소에 기꺼이 협조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번 서울시의 종량제 강화방안은 그런 불편을 무릅쓰고 협조한 시민에게 잘했다고 어깨를 두드려주기는커녕 이제까지는 제대로 행동하지 않았으니 앞으로는 과태료까지 물려서 행동을 바로 잡겠다고 위협하는 형국"이라며 "정책의 성공은 국민이 얼마나 그 정책에 자발적으로 협조하느냐에 달려 있다.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나온 정책이라 하더라도 국민이 자발적으로 협조하지 않으면 성공을 거둘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정책의 성공은 그것이 얼마나 현실성을 갖고 있느냐에도 크게 좌우된다"면서 "쓰레기 종량제 봉투 내용을 확인해 과태료를 물린다는데, 하루에 버려지는 봉투의 숫자를 생각해 볼 때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그리고 쓰레기 봉투를 뒤지는 것과 관련해 일어날 수많은 불쾌한 일들을 생각해 보면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올 지경"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나도 환경주의자 중 한 사람으로서 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에는 열렬히 동의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정에서 쓰레기 매립장 확보가 어렵다는 점도 인정하고 있다"며 "그러나 이번 서울시의 대책은 욕심이 지나친 나머지 상식에 어긋나는 결과를 가져왔고, 따라서 이것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다"며 즉각적 철회를 조언했다.
박 시장이 한번쯤 이 전 교수를 만나 다방면으로 조언을 구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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