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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허가제, ‘현대판 노예제’ 산업연수제로 회귀?

인권단체 “각종 비리 저지른 중기협 대행기관 선정 즉각 중단”

각종 송출비리와 불법체류자 양산,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로 인해 ‘현대판 노예제’로 불렸던 산업연수생 제도가 내년부터 고용허가제로 일원화된다.

정부가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노동착취가 극에 달했던 지난 2004년 고용허가제를 전격 도입하면서 산업연수생 제도의 단계적 폐지 방침을 밝힌 지 3년 만이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산업연수제 시행 시절 외국인력 송출비리를 통해 불법이득을 취해왔던 중소기업협동중앙회를 비롯해 대한건설협회 등 기존의 고용추천단체들을 고용허가제의 대행기관으로 참여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시민사회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외노협)과 인권단체연석회의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11일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그간 송출비리를 저질러온 임직원들의 구속이 끊이지 않았던 이익단체들을 대행기관으로 참여시키는 것은 고용허가제를 제2의 ‘현대판 노예제’로 만드려는 획책”이라며 대행기관 선정 철회를 촉구했다.

이들은 또 “합리적이고 투명한 제도운영을 통해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을 개선해야할 정부가 제도를 이익집단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있다”며 “외국인력제도 자체의 파탄과 몰락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맹성토했다.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민변, 민주노총 등 노동사회단체들이 11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허가제 대행기관의 이익단체 참여 배제를 촉구하고 있다.ⓒ최병성 기자


“각종 비리 얼룩진 이익단체들의 이권이 이주노동자 인권보다 중요한가”

실제로 1993년 산업연수생 제도가 도입된 이래 최근까지도 고용추천기관이었던 이익단체들의 외국인노동자의 인권.노동권 침해 사례는 끓이지 않았다.

특히 이번에 대행기관으로 거론되고 있는 중소기업협동중앙회의 경우, 1994년 간부 2명이 인력수입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것으로 시작해 매년 1998년에는 당시 박상희 회장이 알선수재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바 있다.

2002년에는 외국인 불법 입-출국 알선 브로커 집중 단속 과정에서 전 부회장 이모씨 등 중기협 전현직 임직원들이 대거 적발되면서 송출비리의 주범이라는 비난을 받아왔고 이에 따라 ‘외국인력 관리의 노동부 이관’ 주장이 정치권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대한건설협회도 지난 8월 건설연수생들의 사업장 이탈을 막기 위해 임금의 일부를 강제적으로 적금을 들게 한 뒤 인출을 막는 ‘유보금제도’를 도입해 인권침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지난 2일 고용허가제 일원화와 관련해 정부가 발표한 국무조정실의 ‘산업연수제 폐지에 따른 고용허가제 운영체계 개선방안’은 이들 단체를 비롯, 농협.수협을 대행기관으로 편입시켜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업무를 분산시켰다.

정부, 공공성 강화한다면서 민간 위탁업무 확대

이렇게 되면 중기협, 건설협회 등 이익단체들은 송출국가 현지에서의 노동자 선발과 면접, 사후 취업교육, 고충처리 등 사후관리 업무 전반을 대행하게 된다.

산업연수생 제도의 폐해를 그대로 드러냈던 이익단체들의 외국인력 관련 업무가 오히려 확대되고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받게 되는 것이다.

이들 단체는 사후관리업무를 대행하면서 외국인 1인당 2만4천원을 일괄 징수하고 사업장 이탈을 막기 위해 보증금 귀속금을 거두면서 매년 수백억원의 이득을 챙겨왔다.

1993년 도입된 이래 대표적인 노동악법으로 평가받았던 산업연수생 제도가 2007년부터 폐지되지만 대체제도인 고용허가제 또한 '무늬만 다른 산업연수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최병성 기자


결국 외국인력도입 제도의 공공성 강화를 취지로 일원화된 고용허가제가 오히려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주요 업무들을 민간 이익단체들에게 넘김으로써 그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는 것.

게다가 정부는 이 과정에서 고용허가제 일원화와 관련, 학계.노동계.시민사회단체의 여론을 청취하겠다며 각계 전문가들을 초빙해 구성한 외국인력고용위원회에는 어떠한 통보도 하지 않았다.

인권단체들이 “수백억원의 이권에 눈먼 중기협, 건설협회의 입김이 정부를 이들의 대변인으로 만들고 있다”고 반발하는 이유다.

설동훈 교수 “정부안은 산업연수생 제도 회귀.확대 막을 수 없다”

민간 공익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정부의 조정안에 대해 어떠한 공식적 자료나 통보도 받지 못했다”며 “정부의 방안대로 이익단체들을 다시 대행기관으로 선정한다면 그나마 공단이 관리하던 인력마저 대행기관에 내줌으로써 산업연수생 제도를 확대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설 교수는 또 “결국 현재의 논란은 공익적인 성격을 띠는 외국인노동자 사후관리제도를 민간에 위탁하고 이 업무가 이권이 되는 현재의 잘못된 구조 탓”이라며 “정부는 외국인력제도의 공공성 강화라는 취지에 걸맞게 제도운용 과정에서 이권이 생기는 일을 막아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인권보장, 공공제도 강화라는 취지만 지켜나간다면 대단히 선진적인 제도가 될 수 있다”면서도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방향은 고작 도입 2년만에 과거의 산업연수생 제도로 회귀하는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한편 정부는 국무조정실 조정안의 최종 처리만을 남겨놓고 있는 상황에서 오는 17일 민간 외국인력고용위원회를 개최한다.

노동사회단체는 정부가 이익단체들의 고용허가제 대행기관 편입을 골자로 한 조정안을 통과시킬 경우 강력한 대정부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최병성 기자


그러나 정부는 지난 4일 민간 공익위원들의 의견수렴 없이 국무조정실과 관계부처 장관이 참석하는 인력정책위원회를 통해 조정안 원안 처리를 추진하다 시민단체들의 반발에 부딪쳐 일정을 연기한 바 있어 향후 갈등이 가열될 전망이다.

노동.시민.사회단체 “정부안 강행할 경우 강력한 대정부 투쟁”

외노협을 비롯한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가 국무조정실 조정안을 원안 처리할 경우 강력한 대정부 투쟁에 나설 것으로 경고하고 있다.

이들은 “이름만 고용허가제일 분 산업연수생 제도의 재탕으로 변질되고 잇는 현행 이주노동자 정책의 난맥상을 바로잡기 위한 투쟁에 나설 것”이라며 ▲고용허가제 대행기관 운영 논의 중단 ▲이익집단 대행기관 지정방침 철회 ▲이주노동자 인권.노동권 보장을 위한 공공성 확보 대책 수립을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이와 관련 12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국제노동재단 2층 국제회의실에서 국무조정실 관계자가 참석하는 긴급 토론회를 열고 15일에는 대정부 집중 규탄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또 정부 원안이 처리되는 시점부터 광화문 열린시민공원,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무기한 천막농성과 1인 시위에 들어가는 등 대정부 투쟁을 강화해나간다는 방침이다.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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